1960년대 초, 최구현 선생의 걸작 "설악산의 전모" 1
설악산도 비에 촉촉히 적시고 있을 것 같습니다. 겨울비를 뚫고 설악산을 오르는 건 쉽지 않은 터, 잠시 50여년전의 설악의 창세기 시절로 돌아가보는 건 어떨까요?
설악의 골골과 봉봉을 잘 아는 분이라 하더라도 당장 표지부터 좀 곤혹스러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사진집은 아마 처음 보는 분들이 대부분일텐데, 그 가치는 우리의 예상을 넘어섭니다. 사진작가가 누구인지 규명할 수 있어서 말입니다.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표지의 모습입니다. 이곳이 어디일까요? 맞추시면 바나나 한송이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봉우리 이름과 명명 유래는 아래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설악산의 전모"라고 적혀 있습니다. 전모라고 하고 있지만, 당시 설악은 속초의 외설악이 대표한 만큼 거의가 외설악 풍경입니다. 영어로 Sorak이라고 하고 있군요. 지금은 Seorak이라고 하는데, Sorak(소락)이 훨씬 낭만적입니다. '소락소락'이 소근소근 속삭이는 듯하고, 내귀는 소라껍데기라는 말도 생각나고요. 1964년경 제작된 사진집인데요. 제본방식이 끈이 아니라 호치키스 두방입니다. 55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끄떡없다는게 놀랍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진집의 저자가 설악산을 대표하는 최구현 선생님이라는 심증이 강합니다. 사진의 화질이나 찍는 포인트나 사진 배치방식, 그리고 수많은 봉우리에 이름을 붙인 것 등등 그 말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정치하게 분석하는 건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첫페이지를 장식하는 외설악 약도입니다. 신흥사 입구에 목장이 있던 낭만적인 시대였습니다. 이 약도는 이후 설악산관광기념사진첩에 흔히 등장하는데요. 작성자가 최구현선생님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첫 사진은 외설악 산행의 기점인 신흥사가 등장합니다. 6.25때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터라 단정하고 위엄이 있습니다. 오른쪽 사진, 눈길을 걸어 신흥사쪽으로 걸어가는 세명의 뒷모습이 있습니다.
이 사진집에서 제일 인상깊고, 제일 부러운 사진입니다. 저시절 저곳을 걸어간 그들이 말이죠. 저들은 지금 어디로 향할까요? 길도 반듯한데다 저만치 안내판이 서있는 걸 보면, 이곳이 비룡폭포와의 갈림길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눈이 쌓인데다 쌍천을 건너는 다리도 지금같지 않아 통나무로 만들어 걸친 시절이라 아마 신흥사쪽으로 직진할 거라 봅니다.
외설악 천불동 7형제봉입니다. '관객들은 발을 멈추고 새삼스럽게 형제의 정을 느낀다'라고 하고 있군요.
동원암이라.
표지에 있는 암봉이 동원암이군요. 한자로는 童苑岩입니다. "외설악 천불동 자애골에 자리잡은 동원암은 그 기상이 스승을 모신 어린이들이 흥겨워 하고 있는 형상이다"라고 적고 있군요. 이렇게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게 생겼습니다.
동원암은 설악산 매니아인 기절거미님의 네이버 블로그와 설악산에 수많은 바윗길을 낸 요델산악회 블로그에만 등장할 뿐입니다. 기절거미님의 블로그에는 왜 이 바위가 동원암인지 궁금해 하고들 있는데, 여기서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지금은 바나나 바위라고 만만히 부르고 있습니다.
설악산 선녀봉. 비룡폭포와 토왕폭포에 자리잡은 봉이다. 그 가려함이 선녀와도 같다하여 선녀봉이라 불리고 있다.
"금강문. 외설악 마등령에 자리잡고 있어 관광객은 이 금강문을 출입한다."
한겨울에 이 포인트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이 안됩니다. 산길도 장비도 빈약했던 그 시절 카메라도 잘 알아야 하고, 설악산에 대한 애정도 깊이
고갈봉의 위엄이라 하면서 고갈봉과 오른쪽에 '모암'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설악산을 그리 깊이 찾지 못해 잘 모르는 명칭들입니다.
미륵봉.지금은 대체로 장군봉이라고 부르는데, 예전에는 미륵봉과 장군봉이 경합을 했습니다.
오연폭포. 오연폭포의 명명유래는 서울대 문리대 산악회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형제가 같이 손에 손을 잡고 연결되어 흐르기 때문에'라는 상상보다 그냥 단순히 5폭포가 연달아 있어서 붙여졌다는 게 더 현실적일 듯 합니다.
금강문이 있으니 설악문도 있군요. 쌍불암도 있고요. 검색해보니 둘다 거리 흔한 이름은 아닌 듯 합니다.
설악산 보림암이라는 이름도 검색해보니 거의 나오지 않네요. 천불동 설악골에 자리잡은 보리암의 양편 바위는 신기하게도 그 모습이 같으며 중간에는 3불의 휴식처와도 같다.라는게 명명 유래입니다.
원렴암이라는 명칭도 처음 들어봅니다. 설악산 매니아분들이라면 알겠죠. 노인봉 전경도 포인트를 잘 잡은 것 같습니다.
설악산 도원봉이라는 봉우리 명칭도 있습니다. 검색해보니 도원능선이라는 용어가 눈에 띠네요. 그 출처가 바로 이 도원봉이겠죠.
그리고 비룡폭포. 높이가 100여척이고 '마치 금강산의 구룡폭포를 연상하게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천축대라는 명칭도 처음 만납니다. 하늘을 향한 성벽 축대라는 뜻이겠죠. 저야 깜깜하지만, 설악산 매니아들이라면 곧바로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름을 붙이는 작업은 작위적이면 안되겠지만, 이 이름은 꽤 괜찮은 듯 하네요.
설악산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이들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대부분은 마치 설악을 스승으로 따르는 어린이들 그러니까 동원암의 모양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제 어림으로는 최구현 선생님 이전에도 이후에 설악을 드높인 인물로 그와 비견될 분이 있을까 싶습니다. 되살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설악산 국립공원에 건의를 해 보아야 할까나.
후반부 사진 18장은 '설악산의 전모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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