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본 그때 그시절 3대 관광지는 어디일까요?

등산의 재구성|2019. 12. 23. 21:19

해외여행이 익숙한 시대라 잊혀진 이야기인데요. 1970년대, 1980년대 온국민이 반드시 가보아야 할 3대 '머스트 시(Must See)' 는 어디일까요? 학생들은 수학여행으로, 신혼부부는 신혼여행으로, 중년은 곗돈으로 간 그곳이 어디일지 관광기념 연필로 알아볼까 합니다.

 

두고온 자식, 조카를 위한 학용품도 저시절 관광기념품의 한 축을 차지했습니다. 공책, 연필은 물론이고 학교앞 문방구 수준의 학용품이 기념품 상가에 있었습니다. 지금 이 연필은 플라스틱 덮개까지 있는걸 보면 1980년대 기념품으로 보입니다.

 

하단에 관광기념이라는 글자가 있고, 상단에 명승지 그림으로 보이는 세곳이 보입니다. 과연 어디일까요?  관광기념품 '시장'은 당대 관광지의 이해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합니다. 저  세곳이 모르긴 몰라도 국가대표 관광지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습니다.

 

만드는 곳은 화랑연필입니다. 이 회사의 네임밸류가 어떠했는지, 전국구인지 아니면 관광지 전용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림이 선명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위쪽 두군데는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경주를 상징하는 불국사 다보탑이 있고요. 가운데에 속리산 법주사의 청동미륵대불이 있습니다. 아시아 최고, 최대라는 식으로 광고했고, 시민들도 그런 타이틀에 감동을 했습니다. 홍수한의 권투. 에베레스트 한국초등. 김일 레슬링 등에 환호를 했죠. TV가 없어 그게 뭐하는 건지 몰라도 세계 최초, 세계 1위 이런 타이틀이 주눅들어 있던 한국인들의 자존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문제는 세번째 동그랗게 북처럼 생긴건데요. 이건 어디일까요?

 

 

3대 관광지를 말하고 있는데, 설마 경복궁이나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는 아닐 겁니다. 해인사 법고도 아닐거고요. 그 답은 설악산입니다. 흔들바위죠.

 

시민들에게 설악산은 흔들바위로 표상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설악산 하면 그게 제일 궁금했죠.  정부나 근엄한 학계는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설악은 1965년 천연기념물이니 1971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지역에 선정되었니 하면서 남한 최고의 자연환경지, 세계적인 명산으로 선전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논리가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정부와 학계는 설악산의 악을 한결같이 '嶽'이라 표현했습니만, 시민들은 획순이 간단한 악(岳), 그러니까 '雪岳山'이라는 표기를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설악산을 침봉이 있는 순수자연이 아니라 외설악 그중에서도 흔들바위를 중심으로 한 행락지에 가까웠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폄하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고, 흔들바위는 교통도 불편하고 여러모로 불편한 설악을 세상에 알린 좋은 컨텐츠였을테니 오히려 감사할 일입니다. 흔들바위 말고는 도대체 무엇으로 설악을 드러낼지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지금 설악은 과연 무엇일까요? 케이블카, 산양, 반달곰?  오히려 혼돈에 휩싸인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때 그시절, 4천만 국민은 장소에 있어서 공통의 기억을 갖고 있던 시대입니다. '설악산, 속리산 법주사 그리고 경주'말이죠. '공통의 장소', '공통의 기억'은 국민통합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장소가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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