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장의 사진 - 77 에베레스트 원정대장과 대원 사이

등산의 재구성|2019. 12. 17. 14:56

지난 9일 한국산서회 월례 모임에서 '웃음꽃으로 환한' 순간을 포착했다. 1977년 한국에베레스트 초등 당시의 대장과 대원 사이의 흔쾌한 웃음을 말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도 엊그제 등반인양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한국산서회는 올해부터 '올해의 산서상'을 제정했다. 상금이 100만원으로 등산서적의 집필, 출판과 독서문화를 진작하고자 해서이다. 영광스러운 제1회 수상자는 외국어대 산악부 OB인 김병준선배에게 돌아갔다. 김병준은 고등학교 때 은벽산악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은벽산악회원으로는 그에게 선배가 되는 '설산장(雪山莊)'의 김인섭과 '사람과산'의 허정식이 당장 기억난다.

 

지금 이 사진은 1차 회식을 끝내고 2차 호프집이다. 일이십명이 앉을 수 있는 좁은 방인데, 우리는 이 곳을 샤모니 골방으로 부른다. 이쪽에서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이가 김영도선생님(이하 김영도라 칭한다)이고, 저쪽 푸른색 자켓을 입은 이가 김병준이다.

김영도의 손에 생맥주 잔이 들려 있다. 한모금 입에 축인 듯 하다.  2차 자리에 함께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함께 하는 회원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다. 그런만큼 이 사진은 귀한 사진이 아닐 수 없다. 무슨 이야기이길래 저렇게 환하게 웃고들 있을까?

 

아마 김영도 원정 대장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 친구  참 대단해.... ' 하면서, 77 에베레스트 한대목을 추억했을 것이다. 여기서 김영도의 멘탈리티가 나온다. 김영도는 '친구'라는 호칭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그를 단상에 서서 알피니즘을 고양시키는 강연자로 알고 있지만, 사실 커피를 놓고서 이런저런 주제를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를 좋아한다. 물론 그 주제는 세상의 잡사가 아니라 최근에 읽은 산서 이야기가 중심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나도 이런 상 한번 받아 보면 좋겠어'라고 말해서 좌중을 웃겼을 것 같다. 첫 '올해의 산서'상 말이다. 김영도는 평생 등산에 관해서만 자그마치 3,40여권을 쓰고 번역을 해오고 있다. 평생토록 수많은 상을 받아왔겠지만, '올해의 산서'상과 같은 상은 그 어떤 상하고 비할 바 아닐 것이다. 부디 내년에는 번역일은 그만 하시고, 산악계 인생을 되돌아보고, 등산에 대한 단상을 가다듬은 글을 쓰시어 제2회 '올해의 산서'상을 꼭 받으시기를 기원 드린다.

 

 

이제 내가 이쪽 제일 구석진 상석(?), 김영도의 옆에 앉아서 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계기를 말해야겠다. 산서회에 가입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김영도 가까이 앉은 적이 없다. 항상 그와 함께 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대기하고 있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서로 나눌 '대화'가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날 그의 옆에 앉게 된 건 놀랍게도 그가 이 자리를 내 자리로 찜(^^)해 놓아서인데, 이 부분은 사실 사실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아서 기록하고자 한다.

김영도가 이날 나를 찜한 것은 다름아닌 산서 때문이다. 강승혁 선배가 김영도에게 선물한 일본어 책 쿠시다 마고이치(串田孫一)의 알프(アルプ) 때문이다. 쿠시다 마고이치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할까 하는데 저명한 문인이자 등산가이다. 문인으로서 쓴 책도 두어권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이 책 제목 '알프'를 모르는 상황에서 일본어로만 읽으면 '아르프'라고 읽히기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가 '아르프'로 번역하기도 했다.

 

 산서회 회의 때 그의 책상에 이 책에 놓여 있기에, 실물을 보는 기쁨에 "쿠시다 마고이치의 책 알프이네요"라고 했던 걸 그가 기억해서이다. 산악계를 놓고 보자면 '串田孫一'를 곧바로 읽을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으리라 본다. 그런만큼 그에게 신선했던 것 같다.

 

호프집 특유의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 내가 들었던 - 이야기는 길지 않다. "쿠시다 마고이치의 와카키히노야마(若き日の山)도 좋긴 하지만, 오시마 료키치(大島亮吉)의 야마-켄큐토즈이소(山‐研究と随想)'만은 못해. 깊이가 달라"라고 말하는 게 기억난다.

 

그렇다고 이 책들을 내가 읽었다는 건 아니다. 사람 이름과 책제목을 아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나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산의 사상'에 있어서 김영도의 지적 자양분에는 두줄기가 있다. 한쪽은 서구 유럽의 등산계인데 이부분은 번역서도 많고, 등산잡지에서 해외산악뉴스로 계속 소개해 오기 때문에 그 누구와도 대체로 막힘이 없다.

 

1924년생인 그에게 또 한쪽의 물줄기는 바로 이웃 일본의 등산계이다. 언젠가 그의 서재에서 일본어 서적이 정말 많은 걸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와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은 일본어도 부족하고,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 그대로 일본의 등산계와 일본의 산서를 아는 이 별로 없다고 본다. 그런만큼, 그와의 대화는 반쪽에 그치기 쉽겠다.

 

일본어를 독학하면서 세운 '원(願)'이기도 한데, 더 늦출 수도 없고 해서 새해초부터 '일본어 산서 읽기' 팀을 만들 계획에 있다. 적어도 김영도의 '친구들'은 함께 하면 좋겠다. "쿠시다 마고이치의 와카키히노야마(若き日の山)도 좋긴 하지만, 오시마 료키치(大島亮吉)의 야마-켄큐토즈이소(山‐研究と随想)'만은 못해"라는 말을 선생님께서 이물감없이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장면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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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串田孫一를 읽는 법을 어떻게 외웠는지 민망하지만, 밝히겠다.

串은 꼬치구이집을 표기할 때의 글자이다. 꼬치 --> 쿠시

田이 '다'인 건, 다나카  다나카(田中)수상 할때 알고 있다. --> 다

孫은 '손' 또는 '마고'라고 읽히는데, 지리산 '마고'는 할머니인데, 일본어 마고는 손자이다.  -> 마고

一은 이찌방(いちばん 一)이라는 건 다 알테고... --> 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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