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일본의 산들은 깨끗했는가?

등산의 재구성|2019. 12. 10. 21:09

지금의 일본의 산들은 깨끗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게 한결같은 이야기인데, 1970년 전후에는 어떠했을까? 그때도 그랬을까?


 

 

 

일본 등산계의 중견인 요시자와 이치로(吉沢 一郎)가 1974년 영국산악회의 연감인 'Alpine Journal'에 기고한 글이다. 이글 이전은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

 

외국인들에게 일찍부터 일본을 표상하는 것은 무사도, 후지산 그리고 게이샤였는데, 패전 후에는 후지산만 남았다가 경제대국이 되면서 ('경제동물'과) 환경오염'등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내용이 시작된다. 번역하자면 이렇다.

 

최근 등산세계를 놓고 보자. 일본은 히말라야 안데스 알래스카 등 세계 고산군에서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무의미한 인명 피해에 관한 모든 기록을 갱신 중에 있다. 유럽사람들로부터 일본 원정대는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폭도들같다거나, 등반하는 동물(climbing animal)이나 심지어 등반 벌레(climbing insects)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후지산에 관한 외국인의 인상은 여전히 일본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하나 더 보태야겠다. 후지산은 일본에서 가장 더러운 산이라는 걸 말이다. 산길이나 정상 할 것 없이 어디나 쓰레기로 가득하고, 여름에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후지산을 두고서 일본에서 가장 더러운 산이라 하고, 산길이나 정상 할 것 없이 어디나 쓰레기로 가득하고 여름에는 이루 말할 수 없다라고 적고 있다. 

 

 

글의 스타일을 볼 때 요시자와 이치로가 약간의 오버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들의 등산 행태는 해외 원정대에 있어서는 무모했고, 국내 산행에 있어서는 환경의식이 지금하고는 비할 바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한국인도 한국의 산에 있어서 시간의 힘을 믿어야 할 것이다. 우리도 한때 해외 원정대는 지금 돌이켜보면 뭐라 말할 수 없이 무모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 기억에는 1980년대 지리산과 설악산은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추가) 생각해보면, 1903년생인 그에게 있어서 후지산이 더럽다고 개탄한 것은 패전 전 일본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그만큼 혐오스러웠을 수도 있었겠다. 당시 일본의 산하는 잘 가꾸어졌고, 한국의 산하와는 천지 차이였다.


"윤치호 일기"(1938년 4월 8일 금)을 보면 이렇다.

아침 7시 30분에 시모노세키에 도착했다. 산요 호텔에서 아침을 들고 난 후 9시 25분에 항구를 떠나 온종일 기차를 탔다.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마을의 집들, 들판, 푸른 산 울타리가 깔끔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모든게 조선의 꾀죄죄한 초가집, 민둥산들과 아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경성고보를 비롯하여 각지의 유명 고보들은 수학여행을 일본(또는 만주)로 떠났다. 그들의 수학여행기 역시 이 부분에서 한결 같다. 일본에 도착하는 순간 조선인으로서의 비애와 일본에 대한 선망(?)을 함께 느껴야 했다.


윤치호는 4월 19일 일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도쿄를 이리저리 숨가쁘게 여행하면서 받은 인상은 이렇다. 일본이 국내외에서 한 일을 보면 볼수록, 난 위대한 일본인에게 깊은 존경심을 품게 된다. 그들은 조국을 아름답고 부유하게 만든 후 자기들의 정력과 능률을 조선에 쏟았다.


*여기서 '위대한'이라는 번역어는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대단한'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어로 씌여진 윤치호 일기의 원문이 어떻게 적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great'가 아닐까 싶다. 소설 '위대한 유산'의 '위대한'에 해당하는 great가 실제로는 '대단한'이라고 해야한다고 하듯 말이다.


파릇파릇한 10대 고보생들이 친일파의 거두라고 하는 윤치호만큼은 아니겠지만, 일본의 정해진 코스를 돌고 귀국하면서 어떤 심정일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추가) 이치로 요시자와는 일본을 대표하는 등산가로서 히토츠바시 대학을 졸업하고  1977년 K2 원정대를 성공리에 이끌었다.  많은 책을 일본어로 번역했고, 일본 산악계를 해외에 소개했다. 일찍부터 일본산악회회원으로 활동했고, 나중에 영국산악회,  미국산악회 회원으로 가입했다.

 

한국의 산악인 중 영국산악회와 미국산악회에 가입한 이가 거의 없을 거라 보인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산악인 중 영국산악회와 미국산악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이는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이치로 요시자와의 위상을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추가)  1970년 전후해서 10년간 영국의 산악저널인 alping journal에 일본인에 의해 일본의 산이 소개된 것은 두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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