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구의 한 초등학교 수학여행 이야기입니다.

등산의 재구성|2019. 11. 28. 17:36

 

 

책장 구석에서 이오덕 선생이 엮은 "웃음이 터지는 교실"(1984)이 눈에 띠었다. 오래전에 이오덕 선생의 책들 제법 샀는데, 지금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다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책을 빼서 보니 부제가 '어린이와 소년의 일기문집'이다.  초등학생들의 일기 모음집에서 그때 그시절 등산, 여행 그리고 수학여행에 관한 자료들이 있을 것 같아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을 나서기 어려운 시절인지라 여행과 수학여행에 관한 일기들이 적지 않았다. 오늘은 그 중에 대구시 대봉국민학교 2년 박주*양의 1983년 일기 중에서 관련 장면들을 뽑아본다. 1983년에 2학년이면 지금은 45살 청춘이겠다.

 

6월 10일 언니의 수학여행 준비

 

"예쁜 옷도 사고 모자도 샀다. 김밥 준비도 하고 어머니께서 공부잘했다고 하시면서 참외도 사주셨다. 언니가 여행준비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빨리 6학년이 되어서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

 

이웃의 어머니 친구 민아 엄마, 수경 재민 정운이 엄마,  모두 언니에게 선물을 사가지고 오셔서 잘 갔다 오라고 하셨다. 친구는 참 좋은 것인가 봐."

 

 

수학여행을 앞서서 언니는 옷도 사고 모자도 산다. 동생은 빨리 6학년이 되고 싶어 하는 건 짐작이 된다. 그런데 이웃집 어머니 친구들은 수학여행 떠나는 옆집 학생에게 선물을 사주었다는 데 아무래도 먹을꺼리이기 쉽겠다. 그런데 이웃간의 이런 풍습은 아무리해도 상상이 안간다. 불과 36년 전인데 먼나라 이야기같다. 

 

1983년 대구의 초등학교 수학여행은 1박 2일도 아니고 당일치기였다. 저녁 7시에 돌아왔다고 하니 경주이기 쉽겠고 아니면 합천 해인사일 것이다. 언니는 수학여행 선물로 등허리 긁는 효자손 2개를 사왔다. 부산에 따로 사는 할머니와 아버지 엄마 공용일 것이다. 그때는 다들 집을 나서서 여행이나 등산을 가면 선물을 사왔다. 햇기념품 가게에서 오후 햇살을 받으며 골똘하게 집에 두고 온 가족들을 위해 무슨 선물을 살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주머니 사정을 염두에 두면서 말이다.

 

여기서 잠간. 6월 12일은 ET 영화를 구경했다고 하고 있다. 순간 갸웃거렸다. 내 기억에는 분명히 1984년 ET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들어가 보았더니 역시나이다.

 

 

E.T는 미국에서 1982년 개봉했고 전세계를 강타했다. 이어 1984년까지 수입배급료를 놓고 지리한 싸움을 벌이는 동안  한국의 어린이들은 여러 장난감과 인형 등으로 전야제를 벌이고 있었다. 수입료는 4만 5천불로 결정이 났다고 한다.

 

당시 다방 등 접객업소에서는 ET를 비디오로 보여주기도 했다고 하고 있다. 어른들도 동참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1982년 겨울에 수입한 일본의 경우는 4주간에 걸쳐 자그마치 500만명 가까운 관객이 밀어닥쳤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84년 6월 23일 서울의 헐리우드 극장을 비롯하여 전국의 대도시 극장에서 동시 개봉했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참고로 이 어린이의 일기에는 6월 12일 보았다고 하니 기록의 오기이겠다. 인터넷 시대가 되기 전까지는 이런 걸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다시 원래 글로 돌아오자.

 

6월 19일은 엄마와 아빠가 동창회 모임으로 양산 내원사로 여행을 떠났다. 아침부터 엄마아빠가 돌아오시길 기다렸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선물을 사오시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떤 선물을 사오실까?" 수학여행을 떠난 고모나 누나나 오빠를 기다리는 즐거움에는 선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물들과 선물들을 기다리는 눈빛들을 모아서 여기 등산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아래는 일기 중 재미있는 부분을 두부분만 모셔온다.

 

대구만의 표현일지 모르겠는데, 머리를 자른다라고 하지 않고 머리를 끊는다라고 하고 있다. 둘다 찬찬히 새겨보면 무시무시한 표현이다. 우리 고향에서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컨데 조선 500년동안 한국인들은 삭발하는 스님말고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문화가 아니었다.  따라서 미장원 관련한 용어는 빈약할 것이다. 변발을 하는 청나라나 역시 이상하게 머리를 자르는 일본에는 다양한 표현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엄마는 밀가루 음식도 먹어야지 살이찐다고 하셨다. 라면 국수 수제비 등을 해놓으면 나는 꼭 밥을 먹는다. 밀가루 음식은 맛이 없기 때문이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살찐다는 것하고 라면이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여기서는 모셔오지 않았지만 지금 보아도 신선한 장면이 있다. 대구의 파티마 병원에서는 놀랍게도 15세 이상이 되어야 병문안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초등학생 중학생은 병의 감염원이 될 수 없었다. 한때 메르스 때문에 누구나 출입가능한 우리네 병문안 문화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한때 이런 문화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때 들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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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E.T 가 1984년 개봉했다는 걸 아는 이유는 내가 그때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공부 말고 여가활동이라고는 영화 밖에 없었던 시절이고, 영화는 중학교 때까지 몇편밖에 보지 못했기에 고등학교때 본 영화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84년 여름부터 내가 본 영화들은 E.T 지옥의 7인 007 옥토퍼시. 그리고 상당히 로맨틱한 어게인스트와 사하라. 잊을 수 없는영화, 잊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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