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기념품을 수집한다는 것은... 가야산 입장권을 통해 본.

등산의 재구성|2019. 12. 11. 18:02

1990년대 초 가야산 해인사 입장권을 통해 수집가의 분투와 수집의 의미를 소개해 볼까 한다.

 

 

입장권 도안은 때마다 바뀐다. 가야산 해인사의 이 입장권은 1990년대 초의 것인데, 이를 규명하는 기준은 글의 하단에 쓴다. 여기서는 도안에 집중해보자. 소나무 두 그루 사이에 저멀리 해인사의 전경을 담는 건 상당히 근사하다. 작가의 안목이 돋보인다. 그런데 이건 창작이 아니라 모방이라는 걸 우리는 알게 된다. 꽤 역사가 오래 올라간다.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 못해  아쉽지만 흐릿한 이 사진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1950년대 가야산 해인사 관광기념 사진엽서집이다. 흑백사진에다 하단에 가리방으로 긁은 글씨로 해당 명물을 소개하고 있다. 맨 오른쪽에 위와 똑같은 프레임의 사진이 있다. 사실 대상을 이렇게 원경으로 놓고 양쪽에 나무를 배치해서 담는 건 일제 시대때 작가들의 흔한 기법이었다.

 

 

한라산도 그렇게 찍은 프레임을 예전에는 볼 수 있다. 더 이전의 사진을 찾지 못해 아쉽지만, 60년대 관광사진첩의 이 사진이 그 예다. 일본의 관광지도 일제 시대때 사진엽서를 보면 드물지 않다. 등산 여행분야 자료를 수집하지 않으면 이런 디테일을 알아 차리기 어렵다.

 

 

뒷면의 모습이다. 제일 상단에 '불, 불, 불조심, 쓰레기는 갖고 가자'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저 시절 불조심과 쓰레기가 처치곤란한 문제였음을 알게 해준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항목이 공원입장료하고 문화재관람료로 나뉘어 있고, 영수 주최도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 관리사무소와 해인사로 나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부분도 시대적으로 변화해 왔다.

 

여기서는 어른 공원입장료 700원과 문화재관람료 1000원을 통해 몇년도 영수증인지 알아보자. 예전에는 우표 모으듯 입장권을 모으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관심이 다른데로 옮기면서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사라졌을 터다. 혹시라도 책갈피 속이거나 시골 책장 서랍속에서 입장권을 발견한다면 언제 그 산을 찾았는지 알 수 있겠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펴낸 "국립공원30년사"(1967-1997)의 표지이다. 공단에서 펴낸 50년사는 현재 공단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으나 화려하기는 하나 디테일은 이 책보다 훨씬 약하다. 책에는 공원 이용요금 현황의 추이에 관한 글이 있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처음부터 받은게 아니었다. 입장료를 받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의 저자 김장호 교수는 '산이 동대문운동장이냐, 입장료를 받게'라며 신문에 기고를 할 정도로 당시 산악인과 일반국민들은 뜨아해 했다.

 

첫구절을 보자. "입장료는 1970년 5월 1일 속리산국립공원에서 최초로 징수하였으나 1인당 얼마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고'라고 적고 있다. 입장료 징수 주체측에서도 30년이 채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수집가의 철학"(2019, 천년의상상)에서 저자 이병철의 글이 그 대답이 될 것이다.

 

어떤 물건이 이다음에 문화유산이 될지 당대에는 모른다. 세월이 흐른 뒤 그 물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수집가의 몫이다. 수집가가 수집하지 않은 물건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건처럼 후세에 전해지지 못한다. 수집가의 안목이 역사가 된다.

당대에는 어떤 물건이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집가가 관심을 두고 모은 만큼 남고 모든 건 사라지게 된다. 수집처럼 소멸의 쓸쓸함을 체득할 기회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물건 뿐 아니라 삶 그리고 삶을 넘어서서 인간 사이의 '인연'이 사라지는 쓸쓸함 말이다.

 

 1970년 5월 속리산 입장권, 관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는 나에게 인연이 닿길 기대한다. 그 이유는 개인 소장자와 박물관 운영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개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 말이다.

 

몇개를 체크해보니 이 표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 나 말고는 업그레이드를 할 이가 없을 터이지만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겠다. 입장권에 공원입장료가 700원이라 적혀 있으니, 이 표에 의하면 1993년이 될 것이다.

 

가야산 문화재 관람료는 해당 사찰이 영수를 하는 까닭에 사찰마다 다른 걸 알게 된다. 사찰 들이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도 나름 빅데이터를 갖고 했을 것이다. 가야산 해인사와 속리산 법주사가 선두주자임을 알게 된다. 말인즉슨, 1984년부터 1997년까지 탐승객이 가장 많이 찾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본다. 2000년대는 어떠할까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설악산 신흥사가 아마 선두주자로 올라섰을 거라고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입장료는 1000원인데, 이 표에 의하면 1991년이 되겠다. 여기서도 이 표가 오류가 있음을 알겠지만 대강 1990년대 초임을 알게 된다.

 

 

참, 여기서 하나더 덧보태야겠다. 문화재 관람료는 문화재가 없는 곳은 받지 않는다. 지리산으로 보자면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등 구례지역과 하동 쌍계사 입구만 받는 걸 알 수 있다. 함양과 산청 지리산 입구는 사찰 토지가 없는 듯 하여 문화재관람료는 받지 않았다.

 

 

입장권 컬렉터도 적지 않은데, 그들도 이 자료는 없을 거라 본다. 그들에게뿐 아니라 여느 등산애호가들도 집 어디선가 우연히 입장권이 발견되면, 언제 그 산을 찾았는지 추측할 자료가 될거다. 그 입장권은 이제 예전하고 다른 의미를 띠게 될 것이다.

 

어느 컬렉션이고 어느 선을 넘어서면 큐레이팅을 할 수 있게 된다. 큐레이팅을 통해 의미부여가 되면 될수록, '아무렇지도 않은' 우리네 과거가 보다 다채롭게 채색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컬렉팅을 하는 컬렉터가 많을수록 우리네 인생살이가 보다 풍부해지게 된다.

 

마지막, 박물관은 '은밀'했던 컬렉팅을 사회에 환원 또는 세상과 공유하는 작업이다. 이 공간에서 누군가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항상 하는 말이지만, 무엇이건 '자기 집 안에 있으면 결국 사라진다. 모이면 자료가 되고 그것도 하나의 역사가 된다'라는 태초 이래의 진리^^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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