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스 초이스) 박선홍 선생님의 무등산

등산의 재구성|2019. 12. 30. 17:34

이쪽 서가에서 본 것 같더니, 저쪽에서도 눈에 띤다. 다른 책장에서도 본 기억이 나서 더듬어 보니 순식가에 세권이 모인다. 짐작컨대 2,3권 더 있을 것이다. 제목에 산이 있으니 진작에 사 놓았을 텐데 그것도 모르고 줄기차게 계속 사온 셈이다. 책을 펴 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 참에 처음으로(!) 펴보고 찬탄을 금치 못하겠다. 자세를 가듬게 된다. 고(故) 박선홍 선생님의 명저 "무등산"을 말하고 있다. 무슨 인연으로 무등산이 그를 낳았을까. 왜 다른 산들은 이런 이를 만나지 못했을까?

    * 좌로부터 1990년 증보판                   증보4판(1997)                                      증보7판(2013)

 

우둔한 기억력에 감사할 일이다. 계속해서 사게 된 이유 말이다. 1976년 초판부터 자그마치 7번 바뀌었다 한다 이 책들은 모여야 무등산 전체 그림이 완성된다. 그때그때 세월에 따라 무등산이 변해온 것을 시대적으로 조망할 수 있고, 가감첨삭이 되어 그때그때 우리가 무등산에 무엇을 기대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박선홍이 첫글을 써자 광주 시민이 모두 협업한 느낌이 적지 않다.

 

 

"1950년대초의 증심사 어귀. 포장되지 않은 소롯길에 인적이 뜸하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런 길에 대한 로망 갖고 있는 이들 많을 것이다. 흔하디 흔한 둘레길 말고 말이다. 사실 둘레길 유행은 지금 끝나가고 있다. 우리가 진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가늠하게 된다.

 

책을 펴면서 우선 깜짝 놀란 것은 흑백사진들 때문이다. 이 사진들을 10여년 전에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용산역 옆에 있는 신뢰할만한 헌책방인 뿌리서점 모퉁이 하단 두번째 서가에서 말이다. 이 책 말고도 제법 구입해야 했던 목록이 있었기 때문에, 그 가격에 살까말까 고민을 엄청 했기 때문에 그 위치까지 기억이 난다. 사진집 이름은 '오종태 사진집'이었다. 한달여 지난 다음 도저히 참지 못하고 서점을 들러니 이미 사라졌다. 그 마음 지금까지 아쉬울 뿐이다.

 

 

2013년 증보7판의 하단에는 오종태 저작권이 적혀 있다. 그 이전까지 저작권에 대해 몰랐던 시절 이야기도 되겠다. 사실 나는 무등산에 딱한번 가본 터라 증심사도 모르고 원효사도 잘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한복입은 소녀도 연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근대의' 풍경을 담은 산을- 아직까지 과문한 탓이겠지만- 본 적이 없다.

 

이 책에는 봉건시대의 무등산 모습도 없지 않지만, 근현대 모습이 사실 이 책의 중심이 된다. 1970년대에만 가능했으리라. 이 책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광주 시민들이 협업을 하게 된다. 그들이 갖고 있는 자료를 덧붙여 계속해서 개정된다.

 

 

 

 

* 2003년 6판(다지리)의 표지모습, 이 책은 있을 듯.                2008년 7판(다지리)의 표지모습                                      *

 

일년에 천만명이 찾는다는 북한산에 관한 책도 제법 있지만, 봉건시대의 글을 모은 게 태반이다. 근현대는 없다. 허다한 북한산 전문가가 많지만 그러니까 코끼리의 다리 하나 잡는 수준에 불과하다.  계룡산도 없다. 전근대의 산에 집중할 뿐 근대의 인문이 겹친 산. 그런 산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이는 없다. 금강산을 담은 책도 부지기수인데 근대의 모습을 담은 건 없다. 일제시대 금강산을 분석한 글은 등산박물관하고 두어군데 말고는 없다. 그나마 부산의 금정산은 고 최화수 선생님의 '금정산의 재발견'에 들어 있어나, 그 책의 대중성은 이 책과 비교할 수 없다.

 

백두산도 없다. 백두산에 덕지덕지 붙은 민족과 통일은 있어도 '실상'은 없다. 백두산을 곶감 빼먹듯이 한 책은 많아도 백두산에 대해 산악인이 해야할 '의무'를 담은 간절한 책은 없다.  올해 문재인 대통령이 찾은 백두산이 실제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 글은 등산박물관 말고는 없다.

 

   * 와송정이라고 우리나라 유일한 나무위의 정자라고 한다. 일제 초기에  지었다는데,

그들은 그때 나라가 어떤 처지인지 나라가 어떻게 될지, 그시절을 어떻게 평가할지 잘 몰랐을 것이다.

 

 

지리산은 뭔가 많이 있을 듯 하지만 이 책에 비하면 '근대'는 그저 이미지 뿐이다. 일제하 지리산은 물론이거니와 근대의 비극이라는 지리산 빨치산 역시  그 이미지만 소비하려 들지 않는가 싶다.  왜 지리산 '근대'의 모습을 찾는 노력은 하지 않을까. 역사는 다수가 만들어 가지만 기록은 소수가 한다. 지리산은 400만이 찾지만 글쎄다. 

 

이런 터에 무등산만이 누리는 이 지복은 과연 무엇일까. 박선홍이 어떻게 다른 산이 아니라 무등산 아래에 있었을까. 세권에 담겨 있는 변화상은 적지 않지만, 그건 조직이 아니라 한 개인의 원력임을 느끼게 한다.

 

                              *1977년 재판(양장본)의 표지사진.  증보판들의 표지보다 더 무등산스럽다.

                                 1976년 초판도 양장본이라고 하는데, 인터넷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1950년대 무등산아래 산악회가 처음 생겨날 때부터 함께 했고, 평생을 무등산에서 떠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광주의 오피니언 리더이다보니, 그가 1976년 깃발을 올리자 광주 전체가 함께 해서 2013년까지 이 책을 총 7차례나 증보하고 개정하는 작업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거인의 풍모를 띤다. 이 글을 2013년 광주문화재단으로 저작권을 넘긴다. 그리하여 광주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 책 전문을 볼 수 있다. 진작에 박선홍 선생을 한번쯤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알지 못한 거인의 '웃음'을 구글에서 보며 언젠가 그분의 명복을 빌고 싶다. 그동안 8번이나 개정한 이 책을 모두 컬렉팅해서 말이다. 곧 가능할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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