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경 카라비너가 최초로 등장할 때 소방차의 모습.

소소한 이야기|2021. 7. 22. 17:53

이제는 국민 상식이 된 1910년경 카라비너의 등장 유래와 관련하여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소방수들의 장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그 시절 소방차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당신도 저처럼 이제까지 상상해보지 못한 부분일텐데 그 모습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왜 독일 그것도 뮌헨에서 카라비너가 개발되었을지를 잡설로 풀어 봅니다.

 

세상을 설명하는 두가지 축 중의 하나인 환경결정론의 예가 적용될 것입니다.

천하의 라인홀트 메스너가 메스너인 까닭은 원래 그런 능력을 갖고 태어났겠지만,

동시에 그가 티롤 출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마운틴 저널의 이영준은 카라비너의 등장에 대해 "1910년경 오토 헤르조그가 어느날 뮌헨의 화재 현장에서 소방수들이 고압의 송수관을 잡고 물을 뿌리며 몸을 고정하기 위해 서양 배 모양의 고리를 사용해 확보하는 것을 보고 이를 등반에 적용할 방법을 생각해 낸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고압의 송수관을 잡고 버티기가 얼머나 어려운지 우리는 다들 압니다. 눈썰미 좋은 오토 헤르조그가 그 현장에서 보고 개량한 이른바 '배' 모양의 카라비너는 아래의 모습입니다.

오토 헤르조그와 그 시절 배 모양의 카라비너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 보여집니다.

오토 헤르조그, 눈빛이 보통이 아니군요.

열었다 닫았다 하는  장비가 지금은 당연한데, 만약에 없다고 한다면 앞이 막막해집니다.

인수봉을 오를 이 얼마나 될까요?

 

더 상세한 이야기는 '마운틴 저널'에서 '카라비너-생명을 죽이는 도구에서 살리는 도구로'로 검색하시면 되겠고요.

오늘은 오토 헤르조그가 보았던 소방차와 소방수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지를 보면서, 그가 얼마나 클라이밍을 사랑했는지 볼까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런 장비가 눈에 띨 일이 없습니다.

 

1916년 6월 개봉한 찰리 채플린의 '소방수(The Fireman)'입니다. 저는 DVD로 보았는데,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네요.

찰리 채플린이 소방대원이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사랑을 쟁취한다는 것인데, 당시 영국 소방대의 모자와 도끼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뒤에는 소방차, 물차인데요. 큰 바퀴가 있군요.

이제 우리는 다행히 찰리 채플린을 통해 1910년경 독일 뮌헨의 소방차가 어떠했을지 관심이 생겨납니다.

1910년경만 해도 후발자본주의국인 독일이 영국보다 산업이 그리 많이 앞서지는 않았겠죠.

사람들은 지금 상상도 못하겠지만, 그무렵 Made IN Germany는 지금의 메이드 인 차이나 대접이었습니다.

 

비상 벨이 울리고 2층에서 자던 대원들이 나무 봉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1층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소방차는...

 

놀랍게도 소방차를 끄는 건 말 2마리입니다.

 

대원들은 마부와 물통 사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따그닥따그닥 현장으로 말달리듯 가고 있네요.

 

여기서 잠간, 

'the history of fire engine'로 검색하시면 이게 정답이 아닙니다. 반만 진실입니다.

1910년 당시 마차와 디젤 기관 소방차가 혼재해 있었습니다.^^ 유념하세요.

 

아무튼 저처럼 당신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아니 생각할 이유도 없었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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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소방수들이 고압의 송수관을 잡고 물을 뿌리며 몸을 고정하기 위해"라고 하는데,

당시 소방관들이 물 호스를 어떻게 작동시키는 한번 볼까요

바닥에 소방호수가 둘둘 말려 있고, 찰리 채플린이 소총같은 장비를 꺼내옵니다.

저 호스에 연결시키려는 거겠죠.

연결은 하고...

물은 사방팔방으로 난사하고 있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네요.

이때 호스를 놓쳐버리면 호스는 흉기가 되어 사방팔방 치고박고 하면서 사람까지 다치게 할 판입니다.

말 그대로 몸에 고정고리가 없다면, 즉 카라비너가 없다면 소방대원들 못볼 꼴 보여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영국 영화에서는 그 고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쉽습니다.

하지만 당시 독일의 뮌헨의 소방대에서는 있었다는 거겠죠.

도끼를 들고 화재현장으로 진입해야 할 대원들이 네명 다섯명 달라붙어 호스로 물을 뿌리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지금 소방관들은 물을 어떻게 뿌리는지, 카라비너에 걸고 뿌리는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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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오늘의 잡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가이드와 함께 장비없이'라는 고전적인 등반을 하는 영국 산악계는 카라비너의 필요성을 그리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2) 1910년경 독일의 오토 헤르조그가 살던 뮌헨은 독일 알피니즘의 전진기지였다. 

   뮌헨이 있는 바이마르 지방의 남자는 지금도 무뚝뚝한 '사나이' 이미지이다.

 

   메스너의 고향 티롤에서 산에 가지 않는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 하듯이,

  집집마다 산에서 죽은 이가 없는 집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나고 자라며 보고 배운 티롤의 영향이 없었다면 오늘날 그의 영광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뮌헨도 그리 멀지 않다. 

  뮌헨의 남자는 가정은 도외시하고 자기 할일에 매진하는 문화가 팽배한 곳이다.

  

  그런 기질 그대로 뮌헨파는 당시 등산을 전위적으로 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켄을 개발한 한스 피히틀, 하강법을 개발한 한스 듈퍼 등도 뮌헨파이다. 

  이 장비들은 모두 고난도 암벽 등반을 위해서 꼭 필요한 기술들이다.

  따라서 카라비너가 없었을 때의 '결핍과 위험'을 해결하려는 니즈가 그들 세계에게 있었을 것이다.

 

3)  카라비너의 개발은 역시 뮌헨파 오토 헤르조그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그 시절 독일에서는 전세계 산악인들에게 카라비너라는 엄청난 선물을 주었다.

1916년 찰리 채플린은 영화 소방수를 찍었고,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 이제 전세계 산악인들은 당시 소방차가 어떻게 생겼을지라는 알아도 하나도 쓸데없는 시덥잖은 심심풀이 땅콩같은 의문의 실마리가 된다.

 

이제서야 영화는  The End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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