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식 북극탐험에 관한 놀라운 책 한권

등산의 재구성|2020. 7. 13. 13:02

 제목이 애매해서 등산계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법한 책 한권입니다.

탐험의 목적, 탐험 방식 그리고 자금조달 등에 있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이름하여 "극야행 極夜行"

북극도 아니고 극야라니. 북극행도 아니고 극야행이라니....

 

한국 산악계에서도 북극은 낯설지 않다. 1978년 김영도가 이끄는 북극탐험대가 있었고, 에베레스트, 남극 그리고 북극이라는 3극점의 '최초'의 그랜드슬램이라고 명명한 고(故) 박영석도 있다. 최근에는 '5극지'라는 타이틀 아래 진행한 홍성택의 북극 탐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세개의 탐험은 피어리 등 100년전 근대적 북극탐험과 궤를 같이 한다. 가능한 한 탐험이 가장 용이한 시간을 선택하여 '목표를 향한 중단없는 전진'의 탐험을 해나간다는 것이다. 해뜨면 전진하고 해지면 텐트에 들어가 자고. 

 

'산악인 박영석대장의 끝없는 도전,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도 밟지 않은 땅 5극지.

세계최초 베링해협 그린란드 북극점 에베레스트 남극점 3극점 2극지 탐험 성공기

바람이 거칠수록 내 심장은 더욱 강하게 뛴다'

 

이 책 "극야행"은 정반대의 방식이다. 온통 어둠 속이다.

 

 

저자 가쿠하타 유스케는 어둠을 선택했다. 일년 내 반은 오직 극야의 어둠만 계속되는 그곳에 호기심을 품었다. 6개월 뒤 떠오르는 첫 햇빛은 어떤 느낌일까 라며 80일간을 개한마리하고 단둘이,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단독행"을 한 것이다. 에스키모인들조차 이글루로 들어가는 극야에 오직 그만이 밖으로 나섰다.

 

"의미화 이전의 세계,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사물은 이름과 의미를 상실한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하느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한국의 대학에는 없지만, 아직도 일본에는 탐험부가 있나 보다. 그는 대학탐험부에서 활동하고, 26살 겨울에는 '수수께끼의 협곡'이라고 불린다는 티베트의 야르츠안포 협곡을 단독 탐험했다. 이 탐험을 그린 책으로 '우메사오 다다오 산과 탐험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 여기서 우메사오 다다오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진다. 이미 이때부터 그는 주목할만한 탐험가였으리라. 이어 40살이 되던해 그는 극야행을 선택한다.

 

아직 읽지는 안해 예스24의 어느 책 블로거의 글을 보니, 후원 없이 사비 5천만원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일본의 등산계는 우리랑 달리 후원문화가 그리 보편적이지 않는 걸로 보인다.

 

한국의 탐험 또는 주목할만한 고산등반 중에 스폰스없이 이루어진 예가 얼마나 있을까. 스폰스 구하려다 진이 빠진다는 이야기를 몇번 사석에서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옛날. 그나마 스폰스가 있던 시절이고 지금은 상당수준 그런문화가 사그라들지 않았을까 싶다. 관련 기업들의 상업적 의도와 맞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 듯 싶고. 고산등반이 국가적 사업이거나 국민적 관심이라는 '주술'에서 벗어난 시대가 되어 버렸다.

 

 

 

"빛이 없는 어둠으로 들어가는 여행, 그것은 생애 단 한 번 허락되는 경험이었다."

이런 식의 지극히 사적인 탐험에 대한 격려가 스폰스가 아니라는 것. 사후 책으로 가능하다는 것.

 

아사히 신문사에 8년이나 근무하고 일본에서 유수의 상들을 받았다하니 이 책의 재미를 짐작할 수 있겠다. '박정희'식 탐험, '중단없는 전진'식 탐험이 아니라, 21세기식 탐험을 궁금해하는 이에게 좋은 뉴스가 되면 좋겠다.

 

 

참고로 그가 탐험을 시작한 최고 북쪽의 마을이라고 하는 시오라팔루크. 이곳은 어떤 곳일까. 놀랍게도 인터넷도 있고 페이스북도 하고 그런 동네라고 한다. 21세기식 탐험은 이런 데에서 시작된다는 걸 놀라워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냥 생각없이 '21세기식 탐험'이라고 말을 하긴 했는데, 이거 어떤 탐험을 생각하면서 꺼낸 말인지 좀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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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1)

 

글을 맺고 나니 예전에 비슷한 영화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인썸니아인데, 이건 반대로 하루종일 해가 뜨는 백야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것.

주변환경이 답답하다는 것만 기억나는데, 아무튼 극야행을 읽고 다시 보면 색다를 것 같다.

 

 

 

같은 출판사 "마티"에서  '스위스 방명록'이라는 책을 2015년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체 헤세 바그너 등등 스위스를 찾은 이들을 기억하는 내용인 듯 한데,

 

02_엥가딘의 빛에 이끌리다: 영국인 여행자들, 그리고 세간티니
09_체르마트에 가다: 마터호른 이야기

14_고개 중 으뜸 고개: 고타르트의 어제와 오늘
20_좋았던 옛날에 대한 향수: 힐링소녀 하이디
21_늦깎이에서 선도자로: 스위스 초콜릿

 

등이 들어있다.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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