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등'의 어감에 대하여...
'선등'없이 등반은 불가능하고 그러한즉 산악계도 존재할 수 없다.
아래 글은 이 '선등'이라는 용어의 어감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등반 정조에 대해 스케치해 본다.
일본 등산사를 공부하면, 일본의 등산가들이 '사무라이'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 일단을 짐작해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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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등(先登)'이라고 한자를 부기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정확한 뜻을 알긴 어렵다.
록클라이밍을 해야만 비로소 알게 된다.
두사람 이상이 로프를 묶고 바위를 오를 때, 먼저 오르는 이를 선등이라고 한다.
선등자가 없으면 팀원 누구도 그 바윗길을 오를 수 없기에 선등은 클라이밍의 핵심 용어이다.
그런데 '선등'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어떤 어감을 느끼게 되는가.
클라이머라고 해도 대체로 초급 한자인 '먼저 선(先), 오를 등(登)'으로 푸는 수준을 넘긴 어렵다.
'선등'은 100년 전 이웃 일본이 유럽의 근대 알피니즘을 수용하면서 만들어낸 조어이다.
우리는 번역의 아무런 고민없이 그들의 예를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에게는 어떤 뉘앙스가 느껴질까.
글의 말미에는 중국인들의 경우는 어떠한지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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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치 칸(菊池 寛)은 문예잡지인 '문예춘추'와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카와상을 만들었다. 일제시대 문단계의 실력자인 그가 쓴 단편소설 '형(形)'을 재미있게 읽었다. 사무라이 시대를 비튼 내용인데, 글 도중에 선등(先登)이라는 용어가 나와 주목을 했다.
책에서는 사무라이가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 홀로 말을 타고 창을 옆에 끼고 적진을 향해 달려가서 적병들을 죽이거나 해서 기를 꺽는 걸 '선등'(일본어로는 센토)라고 하고 있다.
일본어 사전을 보니 설명은 이렇다.
본디, 선봉으로 적진(敵陣)에 쳐들어감.
(=, )"
사무라이는 말에 올라(登) 남보다 먼저(先) 적진으로 달려나가는 게 권장되는 문화였다.
동의어인 사키가케( 일번승(
'선등'은 오래전부터 있어온 말이고, 귀족 그리고 전쟁 관련 명예로운 용어인 것이다.
그것도 '목숨을 제일 먼저 버려도 좋다'라는 이른바 그들의 사생관(死生観)까지 담겨있게 된다.
일본의 근대 등산가가 유럽의 'first climb'라는 단순한 등반용어를 '선등'이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일본어 '선등'에는 유럽의 'first climb'와는 달리 그들만의 역사적 의미 '센토'까지 담기게 된다. 언어에는 우리를 규정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전설적인 등산가들이 성취한 등반을 읽을 때 무모한 등반이 아닐까 섬찟할 때가 있다.
'재미있자고 하는 등반', '아니면 말고' 식의 등반이 아니라.
목숨을 '가볍게', '웃으며' '비장하게' 거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를 겹쳐 읽으면 이해가 조금 된다.
수천의 적병들이 우글우글하고 있는데, 단기필마로 창 하나 옆에 끼고 달려가는것은 용기의 화신일까? 무모함의 전형일까? 그렇다면 목숨을 희롱하는 수준의 고산등반은?
옛날 뿐 아니라 최근 황금피켈상을 수상한 일본 팀들의 행적에도 이런 게 겹쳐 읽힌다.
어떤 팀은 프랑스의 시상식장에 사무라이 복장을 하고 가고,
또 어떤 팀은 신루트 이름에 '사무라이' 관련어를 붙이기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젊은 그들의 '극우적' 성향을 의심했는데, 오늘에서 다른 각도로 보게 된다.
한편 구글에 한자로 '선등'을 올리면 그 처음엔 중국의 글들이 올라온다. 중국에서는 공성전이 많이 펼쳐졌는지, 선등(先登)은 제일 먼저 성벽을 올라가는 사람을 뜻하는 걸로 보인다.
이상,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등산계에 대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의 상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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