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등산할 때 왜 고추를 가져갔을까요? 2

등산의 재구성|2020. 7. 27. 22:20

그때 그시절 일본인들은 산에 갈 때 왜 고추를 가져갔을까요?

우리는 설악산 동계 등반할 때 동상을 막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딱 2년전 위와 같은 의문의 실마리가 된 여러 글들을 모아 본 적 있습니다. 

'방한용 고추의 역사'라는 소주제^^의 글이 가능할 거라 봅니다.

(원 글은 --> 여기를)


오늘은 방한용 고추의 실제 사용례를 발견하였습니다.

1902년 핫코다산에서 일어난 비극을 담은 영화 "핫코다산(八甲田山)에서 말입니다....



1902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러시아 해군에 의해 해상 병참로가 막힐 것을 대비해서 모의훈련을 합니다. 육로는 가능한지 그래서 한겨울의 핫코다산을 실제 넘을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거죠.

어이없게도 210명중 193명 또는 199명이 동사하는 대참사를 낳습니다.


내용은 대강 이정도로 정리하고, 

유튜브에서 '고추와 등산'의 인연을 보여주는 실제 장면을 스킵하는데 성공합니다.

여기서 잠간, 교양삼아^^ 이 원작과 원작자가 누구인지 올립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핫코다산에서의 죽음의 방황"이고요. 저자는 신전차랑(닛타 지로)입니다.

닛타 지로는 '고고한 인간'을 썼죠. 

패전하기 전 일본산악계의 한 축은 '고고한 인간', 전설적인 등산가 가토 분타로를 말합니다. 

'고고한 인간'은 15권이던가, 만화가 번역되여, 만화매니아에게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고고(孤高)라는 것은 선비연하는 이들을 칭할 때 하는 '고고한 양반'의 뜻이 아닙니다.

일본의 전문산악용어로 '혼자서 높고 위험한 산을 오르는 이'를 칭합니다. 

영어로 Solo Climber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핫코다산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위기학상 행군하는 병사 뒤의 원추형산보다 더 험악할 것 같습니다. 시작은 저렇게 노래부르면서 겨울소풍하듯 합니다. 그 끝은.....


이제 방한용으로 고추를 어떻게 하는지 보겠습니다.

일본 영화는 상당히 고증을 한다고 하니 아래 장면이 실제라고 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하얀 양말을 신고 있군요.

그 위에 통고추나 고추가루가 아니라 빨간 고추를 양손으로 부셔서 발바닥과 발등에 뿌립니다.



빨간 천으로 싸는 건, 빨간색의 플라시보 효과도 기대해서이겠죠.



이렇게 빨간 천을 이리접고 저리접어서 마무리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군화를 신고 '각반'을 차겠죠.


그 효과는 어느정도였을까요? 다른 문제가 야기되지는 않았을까요?

그렇지만,한계상황에서 결핍을 해결하려는 그들의 노력, 그때그때 새롭게 노출된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곧 역사가 아닐까 합니다.



200여명의 병사들은 동계 기후와 동계장비 등에 대해 무지한채, 단순히 테스트용 모르모토로 이용되다가 결과는 이렇게 됩니다.



미국 이야기를 볼까요. 6.25 전쟁 중 장진호 전투는 그동안 미군이 겪지 못한 최고의 혹한이었다고 합니다. 가죽군화만 신었던 수많은 병사들이 동상에 걸렸고,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미군은 방한군화를 만들어 냅니다. 일반군화보다 훨씬 묵직하고 두꺼워 추위를 대비할 수 있게 된거죠. 역사는 잔인하지만 이런 식인 것 같습니다.



한국산악회의 유학재 선배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운전이 직업이었는데 겨울에 신발에 뿌린 기억도 있네

과학적인 근거로는 고추의 매운 맛은 켑사이신이고 
이게 열을 내지
겨울 발열 내의라는게 켑사인 성분을 넣건데 아주 조금넣고 발열 내의라고 하는데

 그게 열을 내려면 다량의 성분을 넣야하는데 그러면 단가 않 맞음


발열내의 캡사이신으로 검색하니 실제로 캡사이신과 몸의 마찰로 열을 낸다는 등등 이야기가 있네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임진왜란부터 시작하여 발열 내의까지 이어지는 방한용 고추 이야기의 실제 예까지 보게 됩니다. 이상 쓸데없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끝도 없는^^, 쓸 것도 끝도 없는 등산박물관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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