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전후 아련한 설악산 풍경입니다.

등산의 재구성|2019. 10. 24. 18:15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0년대에 설악산을 찾은 이는 극히 드뭅니다.

국민대표관광지인 천불동 계곡이 그때까지만 해도 전인미답의 경지였습니다.

1958년이었던가.

고려대 산악부는 신흥사 앞 쌍천계곡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비선대 위에서 일박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시간 소요될까 싶은 거리입니다.

 

아래는 "박철암의 산과 탐험"에서 그때 그 시절 귀한 풍경을 몇몇 모셔오겠습니다.

 

 

사료로서의 가치가 제일 큰 사진부터 볼까 합니다.

어딘지 전혀 감을 잡기 어려울텐데, 지금은 설악공원으로 예전에는 설악동이라 부르던 곳입니다.

 

우선 길이 이렇게 넓고 반듯한 데에 놀랄 수 있습니다.

다른 산들의 입구 상가가 산길따라 제각각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이 곳은 신흥사 소유 부지로 1960년 전후부터 계획적(?)으로 개발한 도시이기에 그러합니다.

 

설명에는 "1967년 설악동의 풍경, 마등령을 뒤로 한 필자가 포즈를 취했다"라고 하고 있는데,

연도에 오기가 있어 보입니다. 1967년이면 거리와 건물이 보다 더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좌측에 설악산 안내도가 보입니다.

등산이 아니라 관광안내도에 가까웠기에  대청봉까지 등산로 있을 거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외설악의 3구역이 들어 있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비선대와 금강굴. 계조암과 울산바위 그리고 비룡폭포와 토왕폭이 들어 있겠습니다.

각각 한나절(오전 또는 오후) 소요되기에, 하룻밤을 여기서 숙박한다면 두세코스를 찾게 됩니다.

 

가운데 입간판은 흐릿해서 장담을 하진 못하겠습니다만, 중화루(中華樓)라고 여겨집니다.

역시 믿기지 않겠지만,

1965년 전후 이곳에는 다방, 당구장은 물론  심지어 꽃집과 중화루라는 중국집까지 있었습니다. 

 

태고적부터 비경으로 남아있던 외설악은 1960년을 넘어서자 급변하게 됩니다. 교통편과 숙박의 가능성을 확인하자마자 대학생들이 졸업여행을 떠나옵니다. 이어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몰려와 시즌에는 난리도 아니었죠. 그런데도 꽃집은 왜 필요했을까요? 지금 어느 산입구에 꽃집이 있을까 생각하면 미스테리한 일입니다.

 

 

박철암은 1958년 여름 경희대학교 교직원들과 함께 처음으로 설악산을 찾습니다. 그때까지 설악산을 찾은 이들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300명이 안되었을 겁니다.

 

"내설악에는 유수한 사찰들이 산재해 있는데다, 길골과 너레비에는 화전민이 살고 있었기에 길이 아름아름 열려 있었다."라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선답자들의 흔적이 거의 없는 산길을 오르다 맞닥뜨린 쌍폭에서 느낀 감동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가 몇달 지나 59년 1월 한겨울에 다시 찾은데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1959년 1월 다시 찾은 설악산 백담사 모습입니다.

보시다시피 전쟁의 상흔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전후 복원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신흥사도 마찬가지로 별 피해가 없었습니다.

 

북한에서는 4대전투라고 꼽히기도 하는 금강산 전투에서 사활을 걸고 지키려 했습니다.그 결과 금강산의 사찰들이 거의 완파된 것과 달리, 설악산 백담사와 신흥사는 그리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1963년 문교부와 군의 주도로 '한국특수체육회'가 창립됩니다. 보통 체육이 아니라 말 그대로 특수하다고 할 산악, 카누, 낙하산, 승마 등 8개 종목을 육성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특수체육회는 1984년 제1회 산악훈련을 경기도 화악산에서 개최한데 이어 제2회 산악훈련은 설악산에서 열렸는데, 사진은 백담사 입구인 용대리 하천변에서 텐트를 치는 모습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어디에 이런 '텅빈' 공간이 남아 있을까 싶습니다.

 

 

그해 행사에서 백담계곡으로 행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뱀처럼 이어지는 그들 행렬에 상서러운 기운이 서려 있는 듯 합니다.

 

지금은 설악산 하면 곧바로 에델바이스입니다. 저시절에는 아니었습니다. 에델바이스가 국민들에게 각광을 받은 건 1969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개봉 -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봉 이전에 발매된 레코드 -에 힘입은 바 큽니다. 그 이전에는 몇몇 전문 산악인들에게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행진하는 산악훈련 참가자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꽃은 '달맞이꽃, 코스모스'이기 쉽습니다. 꽃도 유행을 탔습니다.

 

 

제 3회 설악산 적설기 등반에 참가한 대원들이 소청봉 인근을 지나고 있다.라고 하고 있는데,

이곳이 어딘지 궁금해집니다. 저 너머에 동해가 있겠죠.

 

 

그리고 그들이 개척한 특수골 계곡길을 따라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는 장면입니다.

이곳이 한국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지금 히말라야에서의 웬만한 원정 타이틀보다 이게 더 본질적인 의미의 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 1960년 전후하여 깊고 깊은 설악산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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