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곳의 이 등산, 관광지는 과연 어디일까요?

등산의 재구성|2019. 10. 29. 00:29

 

서울생활사박물관이 지난 9월 26일 개관한 사실도 몰랐던 터에,

감사하게도 "서울생활사박물관 상설전시도록"을 갖게 되었다.

 

발간사에서 "예전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생활 속 물건들을 온가족이 함께 보며 자연스럽게 그 시절 추억을 회상하고, 삶의 기억을 공유하고, 세대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하고 있다.

 

앞으로 1000년전 삼국시대 토기 조각이나 녹슨 철기 일부분을 전시하는 박물관은 지양되고, 점차 근현대 우리네 일상사를 담은 박물관이 늘어나리라 본다.

 

이곳 등산박물관도 목표를 함께 한다.  '등산과 여행을 통하여' 그 시절의 회상, 공유 그리고 소통을 꾀한다라 하면 될 것 같다. 책에는 등산과 여행 관련하여 몇몇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전문분야이니 말추렴으로 개관을 축하 해볼까 한다.

 

 

"관광 안내책자 -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이후 신혼여행지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라고 오른쪽 하단에 적혀 있는 페이지에 관심을 가진다.

 

사실 1970년 이전에도 등산과 여행은 활발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그건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자동차 대수가 적었기에 교통체증이 없었다. 그래서 어디건 예정 시간에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행스타일이 요즘처럼 '체험'이나 '문화유산 답사'가 아니었기에 한 곳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지도 않았다.

 

관광 안내책자는 4권같이 보이지만,각각 겹쳐 있기에 총 8권이다. 우리는 여기서 일부만 보이는 뒤쪽의 관광기념 사진첩의 명승지가 하나씩 어디인지 알아보자.

 

 

앞쪽에 "아름다운 섬 관광 제주"라 적혀 있고 하르방과 함께 한라산이 표지 모델로 있다.

지금은 한라산이 대표일 것 같은데, 사실 그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신혼여행객이나 관광객들에게 한라산 등산이라는 게 여건상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편에 벚꽃이 환한 가운데 정자가 살짝 보인다.

 

 

똑같은 표지의 관광기념사진첩도 있을텐데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저 정자는 강릉 경포대이다.

강릉 경포대는 보통 저 프레임으로 널리 소개되었다.

 

 

앞쪽에 설악산이라고 하면서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는 장군봉이다. 관광객들이 보통 발걸음을 돌리는 비선대에 웅장하게 솟아 있기에 설악산의 표지모델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뒤쪽에 있는 대교는 어디일까?

 

 

그 시절 이렇게 장쾌하게 생긴 대교는 남해대교였다.

1973년 개통될 때,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는 타이틀로 우리를 끌어 들였다. 한번씩은 가보았다.

 

당시 자존감 낮던 국민들은 '세계 최초, 동양 최대, 아시아 가요제 1위' 등등의 타이틀에 환호했다.

복싱이 인기 있던 이유 중에는 김기수를 비롯하여 홍수환, 유제두 등 세계 챔피언을 계속 배출해서 우리의 자존심을 높여주어서이기도 했다.

 

 

앞쪽에 경주 불국사는 이 각도에서 찍는 게 제일 아름답다. 누가 제일 처음 찾아냈을까 

 

뒤쪽에는 맑은 강물 위에 벼랑이 있고, 그 위에 정자가 당당히 서 있다.

벼랑위에 정자야 전국 곳곳에 있지만, 이 포맷은 오직 진주 촉석루만 차지했다.

 

 

촉석루는 6.25때 폭격으로 불탄 뒤에 새로 세워졌기에 문화유적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일제 때에도 워낙 유명했고, 진주권역에서 달리 볼거리도 없던 시절이라 그러했다.

 

 

그리고 속리산이 있다. 지금은 명성이 예전보다 많이 시들었지만, 속리산은 일찍부터 전국구였다.

국보도 많고, 속리산도 적당하게 높은데다. 정이품송 같은 스토리텔링도 비교 우위의 요소였다.

 

뒤쪽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벚꽃 그늘에 작은 건물이 있다.

 

 

지리산 화엄사의 일주문이다.

80년대 이병주의 지리산, 이태의 남부군 그리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나오기 전까지 지리산은 지금처럼 큰 산줄기이거나 근현대사의 현장이 아니었다.

 

지리산보다 화엄사가 더 앞서 있었다. 지리산은 화엄사의 뒷산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실 일주문이 해당 고적을 상징하는 건 합천 해인사였다. 지금은 팔만대장경이 더 앞서겠지만, 그 시절에는 일주문이었다. 일주문만 있는 사진이 있다면 그건 곧 해인사였다. 해인사의 위세는 이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서울생활사 박물관 개관을 축하하는 메세지를 작성해 보았다. 태릉입구역에 있고 무료라고 한다. 현재 '수집가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7명의 컬렉터의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니 전시가 끝나기 전에 가보야겠다. 컬렉터는 컬렉터의 고통과 기쁨을 알기에 말이다.

 

패티김이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은 나의 빛과 그림자'라고 노래한 건 정확히 컬렉터들에게 바치는 노래이다. '사랑'을 '수집'으로 바꾸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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