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규와 코오롱 스포츠... 30년을 함께 건너온.

등산의 재구성|2020. 9. 3. 20:59

유한규라는 80년대 걸출한 산악인과 코오롱 스포츠간의 커넥션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30년 넘게 이어져 오는 그들의 인연, 옛날 잡지를 읽을 때만이 발견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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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규 선배님의 페이스북에서 코오롱 스포츠의 '안타티카'라는 다운파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남극운석탐사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동계 우모복에 대해 기술 자문을 했다고 한다. 2012년 출시해서 2015년 11월 그러니까 2년만에 벌써 10만장이나 팔렸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한점당 100만원이었다고 한다면 매출액이 자그마치 1000억이나 되는 셈이다. 2015년이면 한참 아웃도어 시장이 좋았을 때이고, 코오롱이 대강 매출 1조쯤 하지 않았을까. 그 비중이 어느정도일지 짐작 가능하다.


돌아와서, 유한규와 코오롱이라는 커넥팅을 아는 순간, 이게 연결고리가 되어 요즘 곁에 두고 있던 월간 산잡지 1984년 6월호에서 새삼 눈에 띤 광고가 있다.



조선일보사가 인수해서 만 4년차인 1984년 6월호 산잡지이다. 이 안에는 관심있는 기사가 두개 있어서 요즘 옆에 두고 넘겨 보고 있다. 맨뒷표지 안쪽의 광고에도 눈길을 자주 주는 까닭은 맨 위 살레와에서 나온 전문 암벽장비들 때문이다. 저 장비들을 소장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오늘까지만 해도 이게 살레와 광고로만 알았지, 당시 살레와를 수입해서 전개하는 회사가 코오롱이라고 뻔히 적혀 있어도 읽지 못했다.



좌측에는 악우회의 두 스타인 유한규와 임덕용이 있다. 캐리어를 보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둘은 딱붙어서 함께 해왔다. 1980년 알프스 마터호른, 그랑조라스 북벽등반, 1980년 체육훈장 수상, 1981년 카라코람 히말라야 등반, 1983년 바인타브락2봉 초등정이 말이다. 


어랏, 코오롱과 유한규 사이를 알고난 오늘에서야 살레와 밑에 코오롱 스포츠가 병기되어 있는 게 눈에 띤다. 당시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던 코오롱스포츠말이다.


2012년 전후 코오롱 스포츠의 안타타카 소개에서는 유한규를 Antarctica Specialist라고 하고 있는 걸 읽게 되자, 1984년 광고에서 코오롱측에서는 유한규를 Production Controller라고 부르고, 임덕용은 Sportswear Designer이라고 하고 있는 것도 발견 하게 된다. 아무래도 기술지원쯤으로 번역하면 될까 싶고, 그 시절 코오롱에서 근무했나 보다.


유한규와 코오롱.

1984년에 등장한 신예 산악인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30년이 지나 60이 다 된 올드카우보이가 똑같은 브랜드의 광고(?)모델로 2012 즈음에도 다시 등장한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1980년대 초반이라면 GNP도 GNP이고 1977 고상돈의 에베레스트 초등이후 등산붐이 촉발하던 때였다. 2012년이라면 IMF이후 아웃도어 시장이 최고점을 찍을 때다. 그 사이 코오롱은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회사로 변했을 터인데 어떻게 저 인연이 가능했을까? 혹시 대산연이 운영한 오지탐사대를 코오롱 스포츠가 스폰을 했으니 이와 관련이 있을까. 다른 산악인과 다른 브랜드에서도 이런 인연이 또 있을까?


*클릭하면 확되됩니다.


그나저나, 다시 보아도 탐나는 살레와의 혁신적인 하강기, 확보기 그리고 등강기들의 모습. 지금은 현장에서 퇴출된 여러 장비들이지만, 저시절 클라이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기존 장비의 결핍을 해결하려 고민했을지 상상만 해도 피가 뜨거워진다. 


등반의 역사는 그때그때 장비에 잘 '적응'한 엘리트 등반가들이 써내려가게 된다. 그러나 무대 뒤에는 등반장비의 역사가 있다.  그들처럼 '적응'하려 드는 게 아니라, 그 결핍을 민감하게 느끼고 해결하려 든 이들의 결과물 말이다. 우리는 엘리트 등반가의 후예가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그들 클라이머겸 엔지니어들의 유산을 상속한 이들이다.


유학재 선배 등 국내에도 풀세트를 소장하고 있는 분들이 제법 있을 터인데, 언제 그분들이 똑같이 재현해서 보여주면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언젠가 등산박물관 한 코너에 이 사진과 함께 똑같이 재현할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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