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월탄 박종화의 남한산성 산행기

등산의 재구성|2020. 9. 4. 22:38

월탄 박종화 선생이 1944년 발표한 '남한산성'을 올려 봅니다. 인터넷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듯 한데요, 그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북한산과 남쪽의 남한산을 비교하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북한산과 남한산이 둘다 서울 근교의 산일 때는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산이 지하철로 연결되어 서울의 산이 된 오늘날에는 이렇게 비교하지 않습니다. 



일찌기 1989년 '백두산 근참기 - 한국 걸작 기행문 23선'가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일제시대 당시 명사들이 경향각지 유명한 산과 들을 찾아 쓴 산행기와 여행기 모음인데요. 좋은 책인데 잘 언급이 되지 않는 듯 합니다. 


저자들이 친일파라고 하면 또 모르겠습니다. 저자 18명 중에 일일이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정인보, 이병기, 안재홍, 문일평, 한용운 김기림, 고유섭, 정지용, 박종화 등 다수는 아니지 않나요. 


당시 뜻있는 지식인들은 전국을 여행하고 산을 오르면서 '국토애호, 민족애'를 고취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산행기만이라도 이렇게 '선집' 형태가 아니라 가급적 '전집'의 형태로 발굴 소개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텐데요.



아쉽게도 그로부터 30여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책을 넘어서는 일제하 산행기나 여행기 모음집이 적지 않게 나와야 하는데 그리 눈에 쉽게 띄지 않습니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이지누 선생이 호미출판사에서 펴낸 '잃어버린 풍경1'과 '잃어버린 풍경2' 말고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백두산은 이지누 선생이 '시력을 잃어가면서' 해냈으니 잠시 미루어도 무방할 듯 합니다. 그런데 북한산, 지리산, 금강산, 한라산 등 첫손에 꼽히는 명산들은 당장 모아도 책한권이 될텐데 아쉽습니다. 북한산은 경기문화재단이, 지리산은 경상대의 남명연구소나 순천대의 지리산문화연구소가 맡아주면 좋을텐데요.


남한산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놈의 조선시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나같으면 쪽팔려서 외국사람들 몰랐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유네스코에 등재까지 되었습니다.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를 통해 엄청난 재원을 투입하고 있을텐데요. 쪽팔리게 패배한 조선시대에 포커스를 맞추지 일제하 남한산성을 찾은 기록들 만나기 어렵습니다. 해방후 우리네 시민들이 즐겨 찾고 애환을 달랬던 대표적인 곳인데도 글과 사진 기록들도 - 과문해서이겠지만 - 아직 그리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월탄 박종화 선생의 '남한산성'을 소개합니다. 아마 읽어본 분들 별로 없을 거라 봅니다. 1944년 김동환의 "반도산하"에 실렸다고 하는데, 그 첫머리를 읽어볼까요.



북한산이 영특하고 준수한 남성미를 가진 호방한 산이라면 남한산은 부드럽고 평범하면서도 어느 구석 느긋하고 너글너글한 맛을 주는 어머니 젖가슴 같은 모성애를 가진 믿음성스런 듬직한 산이다. 산모양은 마치 삿갓을 제쳐놓은 것과 같기 때문에 옛 사기에 그 형상이 앙립과 같다 한 곳도 있다.


서울 동북에 만장의 기염을 배앝으며 우줄거려 솟은 진산 북한산과 띠같인 푸른 물굽이, 남북한강 물을 가운데로 두고 동남에 아리잠직 청대를 눈썹에 지운 듯 등두렷이 구름 밖에 누워 바다같은 창궁을 손질해 부르는 남한산은 한쌍의 좋은 부부 같은 대조다.


박훈산과 남한산은 키가 또한 부부답게 걸맞게 차이가 지니 북한산의 키는 해발 836미터나 되는 수월치 않는 높이지마는 남한산의 키는 453미터밖에 되지 않으니, 역시 남한산이 북한산에 비하여 여자다운 겸양의 덕을 가졌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쉽습니다. 남한산성을 가보지 않은 이라도 북한산과 비교하여 상상을 하며 읽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여행기 쓰기의 전범은 해당 명승지의 역사를 길게 언급하여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교양'서로도 역할을 합니다. 


월탄 선생의 '남한산성'도 마찬가지라서 역사가 너무 깁니다. 영 아쉽습니다. 누구랑 갔는지. 어떻게 갔는지. 점심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무슨 대화를 했는지 등등이면 좋을텐데요. 조선시대 남한산성에 대해 그가 쓴 이야기는 일제 시대 때면 모르겠거니와 지금 우리는 더 지식이 풍부하기도 하여 집중해서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단에 전문을 스캔뜨서 올리니 관심있으신 분은 클릭을 하면 좋겠습니다.



장문의 역사적 사실은 언급한 후 끝맺음은 이렇게 합니다.


"누구나 한번 이 무망루 위에 오르면 호방하고 장쾌하여 스스로 발을 굴러 활연한 흉금으로 긴 휘파람을 불어보고 싶지 않을 이 없을 것이다.


탁 열러진 안계는 일모에 경성, 양주, 양평, 용인, 고양의 모든 산천이 내려다 보이고, 히멀금한 인천바다엔 석조가 끓어 올라 시뻘건 불덩이 같다......


일제하 북한산 산행기에서도 인천바다가 보인다고들 하더니, 남한산성에서도 보인다고 하네요. 다음에 유심히 한번 살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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