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흥미로운 여행은 과거로의 여행. 1894년 갑오개혁과 청일전쟁 사이로

등산의 재구성|2020. 9. 23. 23:49

요즘 괴질 때문에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입니다.

이런때 가장 흥미로운 여행지가 있어니 그건 바로 과거로의 여행입니다.


책으로 지금 이곳을 '낯설게 하는' 재미에 빠지면, 1.4후퇴는 난리도 아니죠.

오늘은 1894년, 우리에게 그 유명한 연도로 돌아가면서 그 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어떤 나라보다 흥미롭고 더 제3세계 여행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순대는 조선 전통의 음식인가

1884년 개화당의 좌절 때 가장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가

조선 사과와 배에 대한 유럽인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등등입니다.


조선 1894년 여름은 오스트리아인 헤세 바르텍의 여행기입니다. 그는 말그대로 19세기 말 전세계를 돌아다닌 본격적인 여행가입니다. 귀족출신이고 20여종의 책을 냈다고 하네요.


1894년은 조선에게 일촉족발의 시대입니다. 동학농민운동에 이어 6월 갑오개혁 그리고 8월 청일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큰 이야기는 여기서 다루지 않고요. 그저 솔깃한 이야기 몇토막만 가져 옵니다.



우리나라의 비교적 가난한 시민층에게 사랑받는 소시지와 치즈는 조선에 없다. 조선인들은 소시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장과 같은 별미를 그냥 먹거나 살짝 구워 먹는 마당에, 무엇하러 그것들을 잘게 다져서 소시지 껍질 속에 채워 넣겠는가.



흔히 순대를 코리안 소세지라고도 합니다. 오스트라이나 우리나 내장속에 피나 고기를 집어 넣는거죠. 그러나 1894년 그에게 순대는 눈에 띠지 않았나 봅니다. 그는 한국인들이 유달리 돼지를 좋아한다고 적고 있는데 말이죠. 조선인들은 귀찮게 순대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본거죠.


그렇다면 순대는 과연 언제적부터 유행했을까요? 조선시대때에도 있긴 했겠지만, 그동안 무심코 전통적인 음식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한번 관심을 가져보아야 겠습니다.



1882년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을 기화로 정변을 일으킨 개화당의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면서 애먼 피해를 입은 것은 근대식 우편제도입니다. 첫 이틀동안 47통의 편지가 조선의 우체국을 통해 배달되었다고 하는데요. 


우편제도는 종말을 맞게 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남은 우표는 제물포에 있는 어떤 투기적인 유럽 회사에 몽땅 팔렸고, 비싼 금액에 유럽의 우표 수집가들에게 넘겨졌으니 대단히 수지맞는 사업이었다.


검색해보니, 어떤 투기적인 회사는 독일계 세창양행이라는 곳이고요. 실제 사용기간은 20여일 정도이고, 47장(?)의 우표중 27장만 발견되어 평가액이 1억원여 된다고 하네요. 다 어디갔을까요? 참고로 이렇게 생겼으니 집 책상속에 있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참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어느 충직한 우정국 직원이 목숨을 걸고 그 우표를 더도말고(!) 라면박스 한상자만 먼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집 깊은 곳에 챙겨 놓았다고 합시다. 150년뒤 자손들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셈이겠죠. 매년 한장씩 감질나게 팔면 되시겠습니다. 충직하지 못한 우정국 신하들의 자손들이여 슬퍼하시라.


1884년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 전지와 발행 첫날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날짜 도장을 찍은 문위우표 ‘초일봉투’도 전시된다. 문위우표 전지는 지금까지 2장, 낱장은 25장만 발견됐다. 문위우표 전지의 평가액은 3000만~4000만원, 국내 한 장밖에 없는 문위우표 초일봉투 평가액은 1억원에 달한다.


약^^을 올리자면, 2011년 중앙일보에 의하면 그 우표의 가격은 특히 전지는 한장당 3000만~4000만원이라 하고요. 맨 아래 인쇄만 된 세종류의 우표는 발행되지 않고 상당수가 남아있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라고 합니다.


컬렉션은 이렇게 돈이 됩니다. 코주부의 김용환 화가이던가. 우표컬렉터가 있는데 이 엽서를 갖고 있다고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외국에서 샀다던가. 1억이 훨씬 넘는다던가....




정부 운운하는 이 이야기는 굳이 옮겨올 이유가 없었는데, "대개 시작이 대단히 좋다"라는 말이 재미있어서 모셔옵니다.



모든 과일이 다 좋다. 그러나 사과와 배는 독일 것과 비교가 안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러하여, 사과는 조선시대 제사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물론 어물중에 오징어도 오르지 못했죠. 잡지를 못했느니까요. 이에 관해서는 벌써 몇번에 걸쳐 블로깅 한 적이 있습니다.


사과와 배는 한국것이 최고라고 하는 이들이 어쩌다 있는데, 그놈의 부사 사과와 신고배는 일본의 품종인 건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알죠. 신고는 일제가 대만을 차지하면서 대만의 최고 높은 산이 후지산보다 더 높자 새로이 높은 산이라는 이름의 신고(新高山)이라고 붙인 걸 기념해서 만든 품종 이름입니다.




"왕의 초상은 동전과 우표에 찍혀서는 안된다. 왜나하면 왕의 초상을 백성들이 만지게 되면 이는 왕을 모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럴 듯 하네요. 그러하다면, 작금의 화폐에 조선의 신민들을 넣는 것은 조선의 예법에 어긋난 것이 되겠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황선생이나 이이 선생 역시 자기 얼굴이 갑남을녀들에게 만지작거리는 걸 꺼려하지 않을까요?


그들을 지폐에서 해방시켜주어도 되겠습니다.~~~



이 문장에서 화가 나는 부분이 "누구도 왕 앞에서 안경을 쓸 수 없다"라는 구절입니다.

왕에게 필요한 신하는 눈이 침침한 신하가 아니라, 세상을 또릿또릿하게 보는 신하가 될테니까요.

이 구절에서 '그러니까 망했지'라는 중얼거림이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 김기훈 우표로 검색하니, 대단한 우표컬렉터이네요. 놀라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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