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설악산 봉정암 산장과 희운각 산장 모습은 이렇습니다.
설악산 산장 중에 의외로 봉정암 산장은 사진으로도 글로도 보기 어렵습니다.
예전, 요델클럽의 나경봉 선배님의 블로그에서 본 게 다인 것 같습니다.
오늘 1981년과 1984년 월간 산 잡지에 등장한 봉정암. 그리고 추억의 희운각 산장을 볼까 합니다.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 안준다는 일본 속담이 맞는지 모르겠다만, 컬렉터들 중에는 잡은 물고기를 먹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동안 산이 들어간 사진자료를 사려고만 했지, 진작부터 소장해 놓은 월간 산은 펴보려는 게 쉽지 않네요. 산 전문잡지이니 산사진이 훨씬 많은데 말이죠.
이제는 더이상 어리석게 굴 수 없고, 오늘은 1981년 12월호와 1984년 12월호의 특집인 "전국의 산장"에서 봉정암과 희운각 산장의 모습과 당시 어떻게 소개했는지를 볼까 합니다.
먼저 1981년 판입니다. 겉보기에는 나무판자로 외벽을 둘른 듯 합니다. 지붕은 양철같기도 하고요.
적지 않은 규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곳을 언급하거나 사진을 찍은 이들이 적을까요?
사진 설명은 봉정산장은 설악산 산장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다니, 그렇다면 대청산장은?
대청산장은 저시절 사정이 있었습니다.
산장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으면서도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전부 14개의 방이 1,2층으로 나누어져 있고, 1층은 온돌 시설이 되어 있다. 총 수용 인원은 150명 가량이며 온돌인 1층은 1,500원, 2층은 1,000원이다.
봉정산장 주인 안도익씨(일명 안창경)는 내년부터 발전기를 설치해서 전기를 사용하고 촛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겨울철에는 등산객이 거의 오지 않지만, 관리인은 상주한다. 침구는 제고아지 않으며 필수 식품을 판매한다.
비록 산장 자체는 운치가 없지만 워낙 주위 경관이 뛰어났기 떄문에 겨울철 봉정산장에서 지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봉정산장은 언제 누가 지었을까요?
이 봉정산장이 그 봉정산장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음새를 보면 아래의 설명이 맞을 듯 합니다.
“설악에 핀 솜다리꽃 인생, 이기섭”(속초문화원, 2008)에 의하면, 박경원 당시 강원도지사는 1965년 봉정암에 약 1백명이 이용할 수 있는 산장을 짓도록 했으며, 다음해인 1966년에는 양폭에도 산장을 짓도록 했다.
1964년 10월 박경원 강원도 도지사는 처음으로 이기섭 박사와 설악산을 찾아, 백담사와 봉정암을 거쳐 대청봉에 올랐다가 소청으로 해서 새로 난 등산로로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왔다. 이 답사등반을 계기로 박지사는 설악산을 개발하기로 하고 1967년 백담사에서 대청을 거쳐 천불동, 신흥사에 이르는 등산로와 백담사에서 오세암을 거쳐 금강굴, 비선대에 이르는 등산로를 개설하고 정비하였다. 이 결과 설악산 내설악과 외설악을 잇는 횡단도로를 1968년 10월에 완공했다.”
이제 1984년 산잡지에서 봉정암 대피소 내부 모습입니다. 1층과 2층으로 나뉘다 보니 층고가 높아보이지는 않습니다. 1층은 온돌이라는데 무얼로 불을 지폈을까 궁금해집니다.
뭔가 근거는 없지만, 일본의 북알프스에 가본 적은 없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상당히 일본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1965년 당시에는 제대로 된 산장이 없던 때라, 도지사의 지시로 짓는 산장이다보니 일본의 방식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겉에서 보면 목조 1층 건물이지만 2층이고 각 방마다 문이 달려있다. 객실은 모두 12개, 1방에 6명씩 수용해 72명이 정원이지만, 최고 400명까지 수용했던 기록이 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용료는 1000원, 침구는 무료제공 매식은 안되고 매점이 있다. 안 창경씨가 소유주고 서종만씨가 관리를 맡고 있다.
어느 글에 의하면 1970년대부터 봉정암 산장이 있었는데, 1985년 강원도에 기부하고 현재의 소청산장이 그 후신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소청산장은 저도 몇번 기억이 있습니다. 아침과 저녁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1981년 잡지에서의 희운각을 보겠습니다.
돌과 시멘트로 지었는데, 모양이 상당히 좀 그렇네요. 대충 지은 시골 화장실 같기고 하고요.
이 산장을 보니, 위의 봉정암 산장이 더 일제식임을 알겠습니다.
내년에 증축예정이라고 했는데, 1983년에 증축이 되긴 됩니다.
한국산악회원 최태묵씨가 1969년 건립한 이 희운각은 80년 2월부터 임영수씨(25세)가 관리하고 있다. 8평정도의 이 유인 산장은 30명 정도 수용가능하다. 겨울철에도 상주하고, 조그만 임시 천막집을 지어 매점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살고 있다. 침구는 전혀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대청봉 대피소, 이른바 벙커 산장은 특수 사정으로 이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산장은 아니지만,최근 관리인이 상주하였던 이곳은 많은 등산객이 요긴하게 사용하였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저도 추억이 있고요.
그래서 봉정암 산장이 제일 높은 곳이 되었던 거죠. 당시 대청봉 대피소는 봉정암 산장과 달리 인터넷에서 사진이 많이 나돌고 있습니다.
1984년 칼라 사진의 희운각 대피소입니다. 산정취 물씬 나는 대피소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1987년 가을 처음 설악을 갔고, 샘물 옆에서 라면을 끓여먹은 기억이 납니다. 대피소는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아마 저 대피소였겠죠.
한떄 냄새만 맡고도 찾아갈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등산객들의 불성실이 노출되기도 했지만....
이 말은 아마 화장실 문제를 말하는 거겠죠.
단층 슬랩건물에 온돌방 1개, 마루침상을 만들었지만 태부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침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고 있네요.
중요한 것은 여름을 제외한 세계절 내내 온돌을 알맞게 데워 놓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산장 주변의 고목이 재료이겠죠.
산장만 포커스를 맞추어 보았습니다. 이렇군요. 옥상에도 텐트를 2개 치고 있고, 저쪽에 식당용으로 보이는 파란색 천막도 보이고 그렇네요...
이곳에 이시절 추억이 있으신 분, 아니면 없더라도 그시절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사진과 설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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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북한산 도봉산 등등 전국의 산장을 소개하고 있는데, 재미있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등산문화 또는 우리의 기억과 다른 산장문화를 볼 수 있고요. 하나씩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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