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운각 최태묵 선생에 대하여.- 한국산악회 자료 1
인연은 인연이 실마리가 되어 희운각 산장을 건립한 최태묵 선생에 대한 다른 정보를 확인했다.
한국산악회가 고난의 행군을 하던 시절, 사무실을 흔쾌히 내어 준 일이다.
김인섭 선생님은 1972년 국내 최초로 국내최초로 프랑스 국립 스키 등산학교(ENSA)을 수료하고, 1974년 한국등산학교 설립위원으로 산파역을 맡았고, 1975년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 제1차 부대장등을 지낸 분이다. 그가 일전에 내가 쓴 '최태묵 선생이 나에게 온 까닭은"이라는 글을 읽고 페이스북에
라고 적었다.
이게 실마리가 되어 "한국산악회 50년사"를 보니, 예전에 안보이던 이 부분이 눈에 띤다.
"그간 산악회는 사무실이 없었다. 그나마 홍종인 회상이 조선일보 부사장을 하던 동안은 그 집무실에서 회무를 보다시피 하였으니 여간 궁색하고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1966년 정기총회에서 부회장에 선임된 주병진 (당시 상업은행 상무이사)의 주선으로 서울 종로 2가 탑골공원 옆에 위치한 뉴파고다빌딩에 사무실을 마련하게 되어 1966년 9월 15일 사무실 개소식 및 창립 21주년 기념회를 개최하였다 사무실 임대관리비는 주병진 부회장이 하기로 하고, 전화비와 연보발행비 등은 회장단과 임원 그리고 회원들의 각출금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각출금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50년사이다보니 여기에는 최태묵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산악회전- 2019 설악산 십동지 50주년 추모 특별전"(국립산악박물관) 말미에 이종택 당시 전시유물실장(현 국립산악박물관장)은 "한국산악회가 걸어온 길"이라는 논고를 썼다.
외부인이 아니라면 호기심을 두기 어려울 주제의 글로, 조선산악회가 어떻게 한국산악회로 바뀌었는가. 한국산악회 영문 명칭은 어떻게 변해왔는가. 사무실 이전의 역사는 어떠한가'이다. 그 중에
최태묵 관련해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 1969년 7월 회보에 사무실을 을지로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최태묵 이사의 건물이 비어 이사키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4월과 12월 사이에 다시 뉴파고다빌딩 506호로 옮기게 된다."
각주에는 아래와 같은 회보 기록을 적고 있다.
- 이번 본 회는 해외원정, 외국 산악회의와 교류 등 시대의 추세에 따라 확장된 사업에 발맞추어 사무실을 옮기었다. 새로 옮긴 곳은 회장실, 회원실, 사무실, 도서실, 장비실 등 5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5개의 방이니 적지 않은 규모였으리라.
김인섭에 의하면 임대료가 무료라고 하니, 그 분의 너른 품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생겨서인지 1년만에 다시 돌아가게 되었지만,
아무튼 이런 거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닐 것이다.
그 주소는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3가 95-7이다. 건물이 작지 않다.
이제는 잊혀진 인물들, 그 인물들을 기억하는 건 그들과 함께 한 인사이더의 일이고,
기억이 더 많아지고, 기억이 기억에 그치지 않고 기록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아웃사이더의 단편적인 기록밖에 인터넷에 나돌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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