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부재 이야기 1... 신현대 1
언젠가 노익상 서울대문리대 ob가 한국산서회에 와서 함께 한 적이 있다. 전해 들은대로 그의 구변이 장난 아니었다. 고려대 나왔으면서 친구따라 서울대 문리대 산악회 회원이라는 게 이해가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자리를 파하면서 노래를 함께 하자고 했다. 그 자리에 김영도 산서회 고문도 옆에 함께 했는데 그 노래가 설악가이다. 서로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긴 했는데, 뭐랄까 분위기가 조금 뻘쭘했다는 느낌.
설악에 관한 노래는 설악가가 있을테고 또 양희은의 한계령이 있다. 두 노래는 결이 전혀 다르다. 설악가는 설악에서 장기 원정한 젊은 친구들이 부를 때 좋을 노래이다. 어깨의 고통. 목마름의 고통, 선배의 고통에 시달린 청춘들 말이다. 도저히 못버티겠다. 여기서 도망갈까 말까 감정의 기복이 극에 달하고 그게 하루이틀지나면서 숙성이 되고, 눈물과 비가 섞이면서 감정은 잦아들게 된다 그때 불러야, 땀냄새가 있을때 불러야 제맛이다. 외부자들에게는 감정이입이 되기 어려운.
양희은의 한계령은 다르다. 일박이일 또는 이박삼일 설악을 찾는 이들에게 딱 맞다. 하나의 괴로움. 통칭해서 삶의 괴로움을 이기려 설악을 찾은 이들에게 맞는 노래다. 저산은 내게 오지마라. 발아래 첩첩산중. 저산은 내려가라하는 이런 거 말이다. 설악은 그러기에 딱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때 노익상이 자기 흥이 겨워서 그랬을 텐데, 막차 끊어지기 전에,막차 시간 보는 이들이 부를 노래는 설악가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우리 삶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실 설악가는 너무 로맨틱하고 어쩌면 산악인이라는 기름기가 있어서 좀 그렇다. 그런 노래로는 돈을 못번다.
엊그제 마운틴지 남선우 사장이 별장 로부제에서 산악인가수 신현대를 불러 공연을 펼쳤다. 여러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나에게 제일 인상적인 노래는 저산너머이다. 저산너머는 언젠가 tV 드라마 '산' 주제곡이라는 거 알거다.
산악계에서 약근 동떨어진 외부자가 보기엔 압권은 '저산너머'이다. 그는 불러 제꼈다. 저산너머 무엇이 있는지. 왜 나는 사는건지. 무엇이 삶의 목적인지 왜 나는 걷는건지 어디가 나으 쉴 터인지.....라는게 가사다. 좀 치기스러운 20대 스러운데. 그의 눈빛. 감은 눈빛에는 산에서 불을 태우지 못한 자기의 삶을 담는 것 같다.
늙은 혁명가가 있다 치자. 그에게 어떤 노래가 어울릴까. 늙은 산악인이 있다 치자. 그에게 노릿노릿 설악가가 어울릴까 아니면 여차저차 못해서 피지 못한 산악인으로서의 청춘을 안타까워할까. 그가 기억할 친구는 살아있는 친구일까. 비운에 간 친구일까. '그리워 불러볼 수 없는 그대의 이름같이 내맘에 변함없는 사랑, 영원히 살아있네.'
어제그제오늘 하루종일 시간나면 그가 부른 저산너머를 들었다.
6.25때 빨치산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달아 올라 이렇게 이야기했다.
'동무들 저기가 달뜨기 능선이요'
그들은 늙기 전에 비운에 갔다. 그리고 몇몇은 살아남았다.
지리산 '달뜨기재'에서 몇몇 늙은 혁명가들 앞에두고 유일한 산노래 가수인 신현대가 공연한다면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설악가. 아니면 저산 너머.
저산너머를 들으면 그들은 눈물을 펑펑 흘릴 것이다.
나는 젊은 신현대를 모른다. 10월 마지막 날 본 신현대는 늙어 있었다.
그가 눈을 감고 부르는 건 늙어서이다. 늙은 산악인은 늙은 혁명가들하고 어울린다.
산만 보면 마음이 불타 오르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없는.
세상이 바뀌면 어디에도 쓸모없는.
이 슬픔.. 이 어쩌지 못하는 슬픔.... 삶의 향로를 바꿀 수 없는 슬픔.
내일부터는 신현대 그만 들을까.
목소리는 왜그리 시퍼래. 쇳소리가 나.
'등산의 재구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령회8.. 김정태가 기억하는 일제 산악영화의 진실은? (1) | 2020.11.30 |
---|---|
위당 정인보 선생의 금강산 산행기를 소개합니다. (0) | 2020.11.09 |
귀면암 유만석씨가 풀어내는 설악산 이야기입니다... (3) | 2020.10.22 |
1980년대 특이한 국산 하강기 - 구민 하강기를 아시는지요? (0) | 2020.10.21 |
왜 등산용, 군용 반합을 항고라고 부르는가...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0) | 2020.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