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회8.. 김정태가 기억하는 일제 산악영화의 진실은?
김정태가 14살짜리 일행 4명을 '두레박'처럼 이끌고 인수봉을 초등한 건 1930년이다.
그때까지 그 다섯명은 단 한번도 인수봉을 '경험'해보지 못한 터였다.
그때 이 기적의 등반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영화 2편' 관람이 전부이다.
대관절 무슨 영화이길래 각종 등산학교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가.
우리는 오늘 192(3)8판 그 놀라운 산악 영화를 생전 처음^^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인수봉 후면을 올랐다고 하는데, 과연 어느 길일까?
지금도 인수봉에 커피자판기가 있다고 농담해도 믿을 사람이 많을 텐데,
김정태는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몰랐던 시절인 1930년 인수봉을 초등한다.
그것도 중학교 2학년 4명과 함께 말이다.
김정태의 천재적 실력은 믿을 수 있지만, 나머지는 천둥벌거숭이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들은 로프 등반법을 배우기 위해 5주 등산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다.
등산학교를 나온다 하더라도 막상 인수봉 밑에 붙으면 매듭조차 당황할 수도 있는 판에.
그냥 유럽의 산악영화 2편 "몽블랑의 폭풍"과 "마의 은령"을 거듭 본게 전부다.
그날은 비가 와서 바위가 미끄러웠고, 앞서가던 20대 3명의 일본인들은 포기하고 내려왔다.
그들 3명은 많은 초등을 한 일본인 산악계의 파이어니어라고 김정태는 적고 있다.
아무튼 14살 전후의 중딩 5명은 아무런 사고도 없이, 물흐르듯이 올랐다가 내려왔다.
김정태 단독행이라면 모르겠거니와 말이다.
*오늘날 말하는 인수C길을 말할까?
지금 인수봉 최고 가이드라 하더라도, 혼자서 4명을 끌고 올라가려나.
도대체 이걸 가능하게 한 '기적의 등산학교' 독일 영화 2편이 무엇인지 재미삼아 살펴보자.
우리는 '국립등산학교'가 아니라 그 '인터넷 등산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다른 등산학교들 다 문 닫아야 한다. 약장수 그만하고 공짜로 하던지.
안 닫고 싶으면 어떻게 할래?
김정태와 친구들 4명의 온사이트 등반에 의심을 품어야 한다.
나는 영화에 의심을 품어보았다.
"등산50년"(1976년), 자꾸 펼치다보니 책 손상이 심해진다.
1988년 나온 "천지의 흰눈을 밟으며"도 4,5권 산 것 같은데, 한권도 눈에 안띠네.
여기서 잠간,
무슨 영화이길래? 결론만 원하는^^ 이들을 위해 유투브에
Luis Trenker - Der Berg ruft (1938) 를 검색하면 1938년 놀라운 산악영화를 볼 수 있다.
'
직경 15mm짜리 20m는 실제 로프를 사용시 10mm짜리 20미터보다 짧게 된다. 게다가 허리에 직접 두르는 매듭을 했을테니, 실제 1피치 등반길이는 훨씬 짧아질 것이다. 그리고 풀었다 묶었다를 반복하는 것은 의외로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그래도 그들은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들은 마침 단성사(?)에서 보게 된 산악영화 '몽블랑의 폭풍'과 '마의 은령'을 보았다.
1929년 백운대 정면벽을 초등할때까지만 해도 로프 확보법이나 하강법을 몰랐다고 고백하고,
이 영화 두편이 유일한 교재였다고 실토하고 있다.
*몽블랑의 폭풍
"마침"이라는 건 "백령회6"에서 진실을 살펴보았다.
김정태가 기억하고 있는 '몽블랑의 폭풍"은 폭풍에 얽힌 다른 영화이고,
지금 그가 말하는 몽블랑 초등 영화의 제목은 "몽블랑의 왕자"로 1934년 식민지 조선에서 개봉하였다.
그렇다면 "마(魔)의 은령"은?
같은 제목이 없어 "사(死)의 은령"인 줄 알았는데, 이건 레니 리펜슈타일이 등장하는 영화
"화이트 헬 오브 피츠 팔루(1929)"의 일본판 제목이라는 걸 알았다.
"마의 은령"은 좀 복잡하다.
"마의 은령"이라는 제목에 대한 김정태의 기억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에드워드 윔퍼의 1865년 마터호른 초등기를 담은 영화를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1928년 현지개봉한 영화가 있다. 원제 "Der Kampf ums Matterhorn(영어로는 Struggle for the Matterhorn 마터호른 초등경쟁으로 번역될 듯)이다.
유투브에서 Der Kampf ums Matterhorn 1928로 검색하면 일부를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1929년 개봉했는데, 제목은 그냥 "마터호른, 마타혼 マッターホーン"이다.
식민지 조선에도 아마 실시간으로 1929년에 같은 제목으로 개봉했을 터이다.
2,30년대 뉴욕의 패션이 곧바로 일본과 조선의 경성에 수입되었다고 하는 시절이니 말이다.
같은해 8월에는 "알프스 정복 Der berg des schicksals"라는 영화도 개봉되었네.
유투브에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프리솔로로 돌로미테를 오르는 대단한 영화다.
이 영화의 주연은 루이즈 토랭카인데, 감독은 아니고 아쉽게도 무성영화이다.
김정태와 친구들이 말하는 '영혼을 홀린' 영화는 이 영화일 수도 있겠다만 모르겠다.
그런데 김정태는 이어 루이즈 토랭카가 감독도 맡고 주연을 맡은 영화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실제로 이런 영화가 있다.
주연인 루이즈 토랭카가 1928년 영화에 불만이 있어 1938년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아서 "Der Berg ruft" 영어 제목은 The Mountain Calls- 산이 부른다"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당시 독일과 일본 관계를 염두에 두면, 분명히 개봉되었을텐데 말이다. 영화 주제 - 도전과 극복-이라는 것도 일본 제국주의의 정서와 부합하고 말이다.
어떤 검색어를 넣어야 할지 당장은 모르겠다.
아놀드 팡크를 중심으로 일제시대 많은 산악영화들이 수입배급되었다. 식민지 등반가에게도 "헐리우드 키드"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 김정태는 1938,9년경 이 영화를 특히 인상적으로 보았을 것거라고 짐작한다. 루이스 트렝카가 '주연과 감독'을 맡았다는 걸 기억하는 걸 보면, 수도 없이 보았을 터이고 자기의 산악인생에 대해 '자부심'과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오류가 있다고 해서, '산악영화' -> 인수봉에로 빠졌다는 서사가 잘못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잘못된 건, 그가 인수봉을 너무 빨리 올라갔다고 서술한 부분이다.
등산학교를 나온 분들, 등산학교에서 많은 학생을 가르친 분들에게 정말 묻고 싶다.
혼자라면 모를까,
4명을 이끌고 인수봉 제일 쉬운 길이라도 선등해서 올라갈 수 있을지 말이다.
아무튼 이 영화는 놀랍게도 인터넷에서 전체를 볼 수 있다.
요즘같은 수상한 시절에 상당히 재미있으니 강추한다.
유튜브에서 Luis Trenker - Der Berg ruft (1938) 를 검색하면 된다.
오늘의 결론:
시기적으로 보거나 그가 영화를 언급하는 걸 보면
나는 김정태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오른 백운대로부터가 아니라,
독일의 산악영화로부터 산에 빠졌다고 본다.
그렇다면 아놀드 팡크로 대표하는 독일 '산악영화'가 아시아에 미친 한 영향이라고 보아야겠다.
일본에도 1910년대 생을 중심으로 '시네마 키드 클라이머'가 있는지 눈여겨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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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50년"에는 김정태가 인수봉을 등정하기 위해 필요한 로프등반법을
김정태의 등반기록 중 본격적인 기록이 나오기 전은 이렇다.
1929년 5월 - 백운대 정면벽 상단부 초등반 - 이때는 자일 확보법과 하강법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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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독일의 산악영화(몽블랑 초등, 마터호른 초등) 2편으로 자일확보법과 하강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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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5월 - 다른 중학생 4명과 함께 최초로 인수봉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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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산서, 일본의 산서로 깊이 있게 공부한다.
1931년 마터호른 북벽을 초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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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4년 1월,마터호른 북벽을 초등한 슈미트 형재를 흉내내서, 엄흥섭과 음흥섭 친구 문모와 함께 서울에서 140리 떨어진 화악산을 자전거로 타고 가서 동계 등반한다.
2. 1935년 1월 조선인 클라이머 최초로 적설기 빙폭등반과 비로봉 초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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