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당 정인보 선생의 금강산 산행기를 소개합니다.
'창동시대'라고 있습니다.
가인 김병로와 고하 송진우, 벽초 홍명희에 이어 1940년 가을에는 위당 정인보가 합류합니다.
변절 또는 훼절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함께 살았으니, 1940년대 그곳은 서기(瑞氣) 또는 민족정기가 가득한 곳이겠습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제 말인즉슨 분명 북한산 또는 도봉산을 찾으며 산을 즐겼으리라 믿습니다.
그들을 창동과 연결짓는 것도 좋지만, 그분들의 산행기와 산행사진을 언젠가 찾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희망'을 말하는 거죠.
창동은 당시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이었으니 '은거'라고 해야겠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경원선 창동역이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었으니 언제라도 경성으로 들어올 수 있었죠.
창동역은 벚꽃으로 제일 유명한 우이동 유원지나 도봉산 가는 길목이기도 하고요.
나무위키 창동역을 들어가보면, 1980년대초까지 있었던 그때 그시절 창동역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련한 느낌이 들더군요.
위당 정인보 선생이 동아일보에 기고한 "남유기신"은 네이버뉴스라이버러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33년 명망가들과 함께 찾은 금강산 산행은 조선일보에 기고하였고, 특별히 발품을 팔지 않으면 읽을 수 없었죠.
위당 정인보 선생의 얼을 기려 김삼웅이 "위당 정인보 평전"(채륜, 2016)을 썼는데, 참으로 고맙게도 책에는 금강산 산행을 담은 "관동해산록"을 담고 있습니다. 춘원 이광수나 최남선 그리고 노산 이은상 등 문인들의 금강산 산행기와는 글투부터 다릅니다. 차분한 어조로 글을 이어갑니다.
김삼웅은 그의 금강산 산행기를 수천수만의 금강산 글 중에 일품이라고 칭송하는데, 여기에 모셔봅니다. 비로봉이 없는 걸 보니 전문은 아닌 듯 합니다. *사진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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