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치기, 굴렁쇠 등등은 한국 고유의 놀이인가?

등산의 재구성|2020. 12. 17. 14:04

88올림픽의 상징은 이어령 교수가 창조해낸 굴렁쇠 굴리기라고 한다.

이어령은 중국을 상징하는 '용'도 안된다. 일본을 드러내는 '부채'도 안된다라면서,

한국만의 고유 문화를 발굴해서 알리려 노력했다고 한다. 

'굴렁쇠'를 암묵적으로 '한국'의 것, 또는 한국에서 비롯된 거라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교수가 있고, 같은 내용을 KBS 등 방송사와 언론사에서도 기사화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그게 다 우리 것일까?


바로 이 그림 말이다.

이 그림에는 평화, 스포츠정신, 한국 등등 수많은 상징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설마 굴렁쇠가 한국고유의 놀이문화라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까마는 놀랍게도 있더라니.


배재대 중남미학과 손성태 교수가 쓴 "고대 아메리카에 나타난 우리민족의 태극"이 그러하다.

음양태극이 그러하고, 언어도 그러하다. 놀랍게도 아즈텍에서 '아사달'을 읽어내고, 멕시코(멕이코)에서 '예맥족'을 읽어낸다. 기타등등 중남미 전문가답게 우리가 쉽게 갈 수 없는 남미의 속살들을 고대 조선과 연결지어 펼쳐낸다.


그런데 나는 호기심이나 재미가 그리 일어나지 않더라. 탁견이라기보다는 궤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출처: 플러스타임즈 코리아


사실 그의 주장은 낯설지 않다. 아즈텍에서 '낯선 코리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한번씩은 들어보았을 '아무튼' '환단고기'류의 주장, 동이족의 대이동이 되시겠다. 중국 곳곳에도 이런 흔적이 있다고도 하고. 한사군이 중국에 있고, 백제가 중국에 있었고 등등 말이다.



저자 손성태 교수는 다른 주장은 논외로 치고 '전통놀이' 파트를 보자.  '아메리카에 나타난 우리민족의 놀이 풍습"이라는 한 챕터를 빌어서, 이런 한국고유의 전통놀이가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까지 넘어갔다고  남미의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고증'을 해 낸다.


놀라지 마시라. 숨바꼭질. 공기놀이. 팽이치기. 줄넘기. 구슬치기 굴렁쇠 씨름 제기차기 등의 놀이는 4,50대 이상 세대의 '원형'의 고향, 유년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익숙하다. 이게 다 '우리꺼고', 아즈텤까지 넘어갔단다. 4전5기의 홍수환 어머니처럼 대한민국만세다.



여기서 잠간, 이도령으로 하여금 춘정을 느끼게 한 성춘향의 '그네띄기'는 한중일 중 한국에만 있는 듯 하다. 중국의 어느책에 의하면, 그네는 연변 등 조선족들의 놀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없다. 아장아장 걷게하는 좁은 폭의 기모노의 특성상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치마가 펄럭이며, 속이 보일락말락, 상상의 극한까지 몰고가는게 그러고보니 상당히 에로틱하군. 


그런데 이 주장이 중남미를 많이 찾은 한 교수의 여흥꺼리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누구나 마음대로 자기 주장을 할 자유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다. 또 놀라지 마시라. KBS, MBC, SBS, 연합뉴스, 조선일보, 동아일보, 국민일보 등 많은 언론이 그의 주장을 '받아' 보도했다고 한다.


허 참. 싶어 검색해보니 프레시안의 대표 박인규가 그와 장시간 인터뷰한 것까지 있다. 진보프레임의 한겨례와 경향신문도 '위대한 고대 코리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프레시안조차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KBS 그것도 다큐에 관한한 국가대표 공영방송이라 할 KBS1에서 말이다 '멕시코 한류 -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라는 특집다큐 2부작을 송출했다. 유튜브에서는 지금도 이 채널이 인기리에 선보이고 있다. 댓글에는 '소름끼친다' 등등 예상가능한 댓글들이 주르륵 있다.


이런 의식의 저변에는 '고대에는 위대했던 코리아' 그래서 몽골리안들이 베링해협을 넘어가서 아메리카 인디언이 되고, 남미로 내려가서는 아즈텍 원주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서사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낯선 곳에 가서 '익숙한' 것을 보면 세계 문화의 보편성, 그러니까 사람 사는 건 대체로 비슷하네라고 느끼는 대신, '우리꺼'라며 고유성으로 꿰어맞추려는 정조는 과연 무엇일까? 어느 산악인도 '아리랑'이나 등등을 네팔이나 티벳쪽 언어나 노래하고 결부하려는 시도를 책에 담기도 한다.


놀랍게도 손성태 교수는 그런데 일본에서 '한국의 흔적'을 찾지는 않는다. 이 또한 놀라운 사실이다. 위대한 동이족이라는 멘탈리티를 가진 그이기에 가까운 일본의 예를 소개하는 건 보다 논리적인 일일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고대 코리아는 줄기차게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 주었다고 배웠다.  우리의 문화가 아즈텍까지 퍼져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좋다만, 문화는 이웃부터 먼저 퍼져가는 게 상식 아닌가. 그의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을 보충하려 중국과 일본에서 '조선 놀이'의 흔적을 찾아 보았다.



그렇다고 남의 일로 일본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책을 뒤적여 본다.

"메이지의 도쿄"(호즈미 가즈오 저/이용화 역, 논형, 2019, 繪で見る 明治の東京)이 되시겠다. 1876년 메이지 유신 이후의 도쿄를 재현하는데 참 재미있다. 같은 포맷으로 누군가 '조선의 서울'을 만들면 좋겠다.


이 책에는 메이지 시절의 어린이 놀이 챕터가 있다. 어떤 놀이들은 에도막부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이고 어떤 것은 새롭게 등장한 놀이들일텐데, 놀라지 마시라.(자꾸 '놀라지 마시라' 하니까 조금 미안합니다..)



어랏.  사방치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굴렁쇠 굴리기, 딱지치기, 죽마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놀이가 일본에서도 했다니. 고대 한국의 흔적이 이때까지 남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뿌듯한 일이 되시겠다.


책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장난감이 없더라도 아이들은 충분히 줄겁게 놀았다. 구슬놀이. 딱지. 팽이. 공기놀이...

유리구슬이나 죽방울 역시 메이지가 되었어도 유행한 놀이이다....

죽마. 굴렁쇠 굴리기. 연 등은 직접 만든 것이다. 칼로 깍아서 만든 나무봉을 땅에 찌르며 노는 넷키라는 놀이도 메이지 특유의 놀이였다."



여자놀이로는 '줄넘기, 공기놀이'가 있다. '동대문을 열어라'의 일본 버전로 보이는 '가고메 가고메'와 '아침바람 찬바람에'로 시작하는 '셋셋셋'도 보인다. 한눈에 보아도 우리랑 똑같다. 놀라워라.

조선의 흔적이 이렇게 연면하다니....


책에는 이렇다 

"여자아이의 놀이도 소꿉놀이, 종이접기놀이, 실뜨기, 공기놀이, 공치기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고무공이나 고무풍선은 메이지 중기에 국산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고메 가고메'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놀이이다.


오하지키놀이도 있다. (납작한 유리구슬, 조가비, 잔돌 등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노는 여자아이들의 놀이라고 한다. 이거 우리가 말하는 땅따먹기랑 비슷한 듯 하다.) 줄넘기 사방치기(땅 따먹기), 숨바꼭질, 술래잡기 등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다."


라고 하고 있다.


일단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우리의 전통놀이가 1,2천년전 일본에까지 넘어가서 어린 아이들의 놀이문화에도 살아남아, 그들의 정신성을 '환국화'하고 있다고 손성태의 주장을 확장시킬 수 있겠다. 왜놈들은 그게 우리문화인줄도 모르고 ㅉㅉ


그러고보면 하도 왜색문화 청산, 친일문화 청산하는데, 이런 걸 보면 왜색문화의 근본이 조선문화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무리해서 그렇게 운동을 펼칠 것도 없겠다.


그런데 또 놀라지 마시라. 세상일이 어떻게 그렇게 호락호락하고 일면적이겠는가.

이제 우리가 대국앞에서 '주눅들'시간이 되었다.


1992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한 중국의 시인 베이다오가 자전적 에세이 "베이징, 내 유년의 빛"( 김태성 역, 한길사,  2017년)을 냈다. 1949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계속된 유년기를 보냈고, 오늘날의 북경 이면에 감추어진 '진짜' 북경을 되살리려 한다.


'장난감과 놀이'라는 챕터에서 베이다오는 195,60년대 소년시절 즐긴 놀이 몇개를 소개한다.


구슬치기가 있었다. 자신의 구슬을 차례로 다섯개의 구멍에 집어 넣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격을 수비로 삼아 상대의 길을 막으면서 자신의 길을 열어야 한다.


어랏. 조선과 메이지 일본 그리고 손성태가 말하듯 아즈텍에만 있을 구슬치기가 중국에도 있네.

문화의 전파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중국에게 전해주었다고 주장하는 건 조금 궤변에 가깝지 않을까?


굴렁쇠 굴리기도 있었다. 갈고리로 커다란 굴렁쇠를 굴리면서 균형과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다....아마도 동그라미는 이동에 대한 인간의 꿈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형식일 것이다.



어랏. 굴렁쇠 굴리기는 이어령의 88올림픽에만 그리고 일본과 아즈텍에만 있을 것 같은데

중국에도 있었다니.

이 역시 우리가 거대한 중국에 전파했다고 주장하는 건 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팽이치기가 있다. 


어랏, 이건 우리나라와 일본과 손성태가 말하듯 아즈텍에만 있을 것 같은데, 중국에도 있네.

아무리 대담무쌍한 주장을 펼친다 하더라도 우리가 팽이치기를 중국에 전파시겼다고 주장할 이는 없을 것이다.



손성태 교수와 KBS 등 방송언론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왕 과감하게 주장하고 싶으면, 몇몇 놀이들은 일본의 '근대' 놀이들이 아닐까라고 일본인이라면 주장을 할 듯도 싶다.


베이다오가 팽이치기를 "매국노 때리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일본과 전쟁을 하던 시기에 생겨난 놀이라서 그런 것 같다"라고 말하고 있다. 베이다오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신뢰할 수는 없지만, 팽이치기가 중일전쟁때 생겨난 놀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중일전쟁때 북경을 점령할 시기, 일본인 아이들의 놀이를 보고 베이징 아이들이 따라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겠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한국의 전통놀이라는 제목의 책은 정말 많다. 그 중에 '사계절 우리 전통놀이"(미래아이세움 2020)에서는 '공기놀이는 고구려 벽화에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된 놀이에요."라고 하고 있고, "고대 그리스에서도 비슷한 놀이를 했다고 해요'라고 하고 있으니 채 공정한 서술이다.


공기놀이는 고구려 벽화에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 놀이는 귀족들의 놀이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에도 놀이였을까? 나아가 아이들의 놀이였을까? 나는 조선 실학자의 글이나, 일제 이전 서양 선교사들의 글에서 발견하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 


필립 아리에스가 쓴 "아동의 탄생"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근대가 오기 전까지 아이는 아이취급을 받지 못했다.아이만의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축소된 어른 정도로 '막' 취급을 받았다.


근대이전 그들에게 과연 그들만의 놀이란게 과연 무엇일까? 참고로 미끄럼틀도 근대 초기엔 귀족과 숙녀들을 위한 어른들의 놀이였다. 

한국에도 '아동'의 탄생은 근대에 비롯되었을거라 본다.

조선조 양반네들이야 4,5살부터 천자문부터 떼어야 했고, 농민의 아이들은 예비농군으로 대우받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놀았을 것이다. 오성과 한음이 그러했고, 놀부가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이 논 놀이는 남자아이라면 눈싸움, 돌싸움, 활놀이, 칼놀이 흙놀이 달리기 잡기놀이 등등 어른들의  모방이나 전쟁의 축소판에 가깝지 않았을까.


공기놀이. 사방치기. 줄넘기 등등 게임의 규칙이 들어간 고급(!)놀이는 쉽지 않았을 거라 본다. 근대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진은 글과 관련이 없음^^


예전에 중국 갔을 때 산 책 중에 '중국의 고대문화와 근대스포츠'라는 식의 책이 있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모든 스포츠는 다 고대 중국에 있었다'이다. 중국 곳곳의 벽화와 책자를 통해, 골프 축구 농구, 야구, 등등의 원형이 중국에 있었다 또는 중국에서 발원되었다라는 식이다.^^


중국에서 다 있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게임의 규칙이 들어간 근대 스포츠하고 관계를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주장을 북경 CCTV에서는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좀 달라야 한다. 인류 공통의 보편성을 더 찾아 나서야 한다. KBS나 프레시안의 박인규도 좀 자중해야 한다.


결론: 고조선과 부여 옥저의 아이들도 놀았다. 

그러나 그들의 놀이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급' 놀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하고 지금은 '다른 나라'이고, 그때는 아동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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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정리삼아 이제 오늘의 문제를 내보내겠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재로 내준 1학년 자료입니다.

"우리나라 상징을 색칠해 봅시다"


다른 건 다 초딩수준이고^^, 오늘 우리 주제에 맞게 가운데에 있는 빨간색으로 표시한 - 땅따먹기 -가 문제입니다.

이게 과연 우리나라 상징 또는 우리나라 놀이문화의 상징일까요?



초등학교 4학년한테 '지금 이 놀이 중 우리나라 놀이는 무엇일까요?' 물었더니, 

낚시말고는 다 우리꺼란다. 

내가 100년전 일본 아이들 놀이라고 했더니... 

뭔가 느끼는 바가 있는지, 놀이가 꼭 우리나라 놀이일 필요는 없겠네요라고 한다.



우리가 어려서 놀던 이 놀이 중 과연 얼만큼이 조선의 것이고, 얼만큼이 일본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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