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만년필 글씨로 김영도 선생님의 글을 감상합니다.
원고지, 만년필, 잉크향.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 그리고 정말로 잃어버린 것, 편지.
아래는 김영도 선생님이 이 모든 걸 담아서 쓴 일본의 한 에세이를 보겠습니다.
그분께서 우리 모두에게 새해 선물로 주신 걸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한국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아무래도 우리들^^ 바깥에는 없겠죠.
2014년 "세로 토레" 저자 사인회에서 사인을 하시는 모습입니다. 좋아하시는 커피 한잔을 옆에 두고서 말이죠. 지금 쓰는 문구는 "오늘의 주인공에게"입니다. 항상 후학들과 후배들에게 갖는 신뢰와 기대가 오롯이 드러나는 문장입니다. 이 모습을 연상하면서 그분이 번역하신 글을 보죠.
"대담 이야기"
대담의 요령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시간에 늦지 않는 것이라고 어느 작가가 말했다. 자기가 그 대담의 주인인 경우, 상대가 조금 늦는 것은 손님이니 괜찮지만, 이쪽이 늦는다면 말이 안된다.
그것이 잡지의 대담이라면, 편집자도 카메라맨도 몸 둘 바를 모르게 되며, 손님에게 변명할 길이 없다. 손님이 화가 나서 가버려도 하는 수 없다. 시간에 늦은 쪽은 어지러핀 분위기를 제 자리로 돌리려고 손님에게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대담시간이 그만큼 지장을 받게 된다.
또한 주인도 손님도 구별이 없는 대담에서는 절대로 늦어서는 안된다. <차가 밀렸습니다>라고 변명하듯 대담의 주도권을 상대방에 빼끼게 된다. 뒤늦은 만큼 이야기가 쪼끼며, 그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그만큼 힘들고 애를 먹는다. 대담을 마치고 모두 웃으며 사진을 찍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상대가 괴씸하다고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나도 몇차레 대담을 경험했지만, <이것은 큰일이다. 어려운 상대다.>는 사람이 있었다. 아와다니 노리코가 그였는데, 벌써 몇해전 이야기다.
* 여기서 아와다니 노리코(淡谷のり子)를 알게 된다. 그녀는 1907년생으로 샹송계의 선구자, 블루스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쇼와시대의 대가수라고 한다. 유투브에서 검색해서 들어니 '그대를 잊지 못할 블루스(君忘れじのブルース), 비의 블루스(雨のブルース), 상해의 룸바(ルムバ上海), 호반의 블루스(湖畔のブルース)가 우선 뜬다. 아름다우니 한번 들어보시라. 엔카(트로트류)와는 달라 지금 노래 같다.
이어령 교수가 중앙일보 기고글에서 그녀를 언급하는 걸 보면, 일제시대 지식인들은 그녀를 잘 았았던 것 같다.
주인 쪽인 나는 30분 전 편집진과 아카사카 요정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약속시간 10분 전인데 손님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리자 5분, 3분, 1분, 땡 했을 때 <손님 오셨습니다>고 요정 사람이 알려왔다. 그녀는 약속 시각에 꼭 맞추어 나타났는데, 그것은 마치 계산이라도 한듯 했다. 이때 나는 왼쪽 후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자 미닫이가 소리없이 열리면서 손님이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머리를 깊히 숙였다. <아오다닙니다>고 대가수가 머리를 숙였을 때 나도 스태프도 너무 황송해서 이번에는 오른쪽 후크를 또 한방. 그런데 그녀는 대담하게도 혼자 나타났던 것이다.
따라온 사람이 없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강열한 보디블로였다.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일이 아니고 놀러 온 기분이었다. 지가 무슨 동반자가 필요했겠는가. 이것으로 그날의 대담은 이미 승부가 나고 말았다. 일방적인 아와다니 페이스에 나는 놀안고 만 셈이다. 그 뒤 편집진과 신주쿠의 바로 흘러 갔지만 마음은 방심상태였다.
<그야말로 박력 그것이었어요. 나도 여러해 편집일을 해왔지만 머리를 들 수가 없었어요. 특히 그 이야기엔 꼼짝도 못했어요.>
그 이야기란 이런 것이다. 음악상을 받을 때 가수 돈은 곧잘 눈물은 흘리더군요 하고 내가 묻자 아와다니는 이렇게 말했다.
가수는 무대에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말하는 나도 꼭 한번 운 적이 있어요. 전쟁 중 군인들을 위문했을 때, 무대 뒤 분장실로 열 명 정도 젊은 병사가 찾아와서, 우리는 특공대원이어서, 언제 자리를 뜨게 될런지 모른다. 그때 한참 노래 도중에 나가게 될지도 모르니 그 실례를 미리 사과하려고 왔다고 했어요.
내가 첫번째 노래를 끝내자 그 병사들이 한꺼번에 일어서서 나를 보고 경례하고 나갔어요. 앗! 출격 명령이 내렸구나. 이제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순간 쏟아지고, 쏟아져 결국 나는 노래를 더이상 부르지 못했어요. 그때 한번 뿐입니다.
이런 무서운 이야기 앞에서는 대담의 요령 따위는 산산조각이다.
"하라다이라(만화가). 91년산 일본 베스트 에세이집"
はら たいら(本名:原 平, 1943-2006)은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이자 수필가로 수많은 책을 썼다.
일본 베스트 에세이집은 일본의 유명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수필상의 선정작을 담은 책으로, 그 권위를 높이 평가받는다.
김영도 선생님은 6.25전쟁 중 학도병으로 동생과 같은 분대로 참가했다. 포항 인근 형제봉 고지를 뺏기 위해 진격하다 그만 동생과 절친한 친구는 죽고 만다. 달이 하염없이 밝은 그날밤 그들을 묻고서 그는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그 다음날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졌고, 인민군들은 전선에서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이 내용을 담아 2010년 전후 일본어로 투고하였고, 그해 베스트 에세이스트 상을 받았다. 선생님은 평생 받은 그 어떤 상보다 이 상을 받아 영광스럽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 등산잡지에 그가 기고하는 글을 한번이라도 읽은 이라면, 그가 수필이라는 문학형식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특별히 이 글을 번역해서 주신 배경에는 이런 심정도 있을 것이다.
"그 많은 글 가운데서 가끔 읽으며 그때마다 울곤 하는 수필들. 우리 주변에는 이런 글이 왜 없을까. 3,8선과 6,25를 겪은 우리인데.... 하기야 시대가 바뀌었으니 지금 젊은 세대의 감성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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