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사람과 산 vs 2010년대 사람과 산

등산의 재구성|2020. 2. 3. 18:56

주말 일본어 공부하는 재미에서 살짝 손을 떼 1990년 "사람과 산" 창간호부터 3년여 동안의 목차를 주욱 훓어보았다.  그때가 지금보다 황금기였을테고, '얼핏' 든 느낌은 이러했다.

 

원로들의 글은 고차원적인 등산 담론이 아니라 회고담이 주된 주제였다. 이건 옳은 방향이다. 문득 생각하건대, 산악운동이라는 것은 완전무구한 미래, 고고한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종교운동이 아니라, 후배들이 선배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스포츠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두번째, 김영도 선생님의 글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분은 지금 매달 월간산, 사람과산, 마운틴지에 기고를 하고, 많은 산악계 행사에 참석하여 축사를 한다. 따라서  그가 77 에베레스트원정대장 이후 줄기차게 산악계의 중심에서 활동했으리라 사람들은 짐작을 할 것이다. 사실은 전혀 다르다.

 

 

필진들은 화려하다. 깃발을 들자 젊은 전문 산악인들이 삼국지의 영웅들처럼 몰려들어 필진으로 합류한다. 박인식, 신영철, 정호진, 박기성 등등 끝이 없다. 김홍성 조광래, 김기섭, (정혜선) 등등 요즘 페이스북에서 만나는 선배들 이름도 발견하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다. 요즘 사람과산의 필진은 어떠할까? 몇몇 말고는 '노스페이스와 함께하는 ***', '블랙야크와 함께하는 100명산'등의 포맷이 우선 떠오른다.

 

두번째, 그 시절 목차만으로도 '뜨거움'이 느껴진다. 고산등반에 대한 열정과 원정러시(rush)말이다. 지금 사람과 산 잡지에는 원정기사 거의 없다. 여러가지로 분석가능하겠지만, 예전부터 언급했지만 나는 '등로주의' 운운하며 고산등반의 '방식'을 은근히 강요하던 산악계 문화를 주범(?)으로 꼽는다. 만년설이 하나도 없는 나라에서, '재미'로 고산 오르는 이들을 '방식'으로 몰고 가는 게 과연 온당한가. 만년설의 서구유럽도 그러하지만, 제대로 된 알파인 스타일은 극소수 엘리트산악인들에게만 가능한 방식이 아니던가. 

 

이제 원정등반 자체가 씨가 말라가고 있다. 엉뚱하게도 기껏 '국립'으로 산악박물관이나 짓고, '고작' 국립등산학교나 만들고 있다. 이런 것들이 과연 산악계 숙원(!)사업일까. 아니면 지엽이나 말단일까.

 

돌아와, 개인적으로 관심가는 것은 이거다. 그 시절 원로산악인들이 '연재'한 글들의 비중이 적지 않다. 김근원 그리고 전담 선생이 대표적이다. 그들의 글들은 등산철학을 강(講)하거나 후배들을 질타하는 대신에  '옛시절 회고'라는 주제를 갖고 있다. 책을 펼쳐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들의 옛시절이라는 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과 다름없다. 인수봉이나 설악산 한라산 등 한국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회고담'이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커다. 산악운동이라는 건 완벽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종교운동이 아니라, 선배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스포츠와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심코 그들의 나이를 주먹구구로 셈해보았다. 김근원(1922년생), 전담(1933년생)으로 짐작되니, 1990년 경에는 60대 전후의 나이에 불과(!)했다. 그때는 전문산악계의 벽도 얇았거니와, 젊어 한때 맹렬했다지만 늙도록 산을 떠나지 않은 원로산악인들의 숫자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전문산악인의 수도 엄청나다. 평생 산과 함께 하고 원정등반 경험도 풍부한 60대가 적지 않다. 그런데 "사람과 산"에 '원로산악인'의 입장에서 연재글을 쓰는 분들은 김영도, 이용대 그리고 요즘 이규태(성균관대 산악부 OB) 등등이다. 나이로 보자면 각각 90대, 80대, 70대가 된다.고령화 사회의 영향이 클 터라 우선 수긍을 하게 된다.

 

  60대들이 선배들을 예우해서이기도 하겠거니와 등산사(史)의 관점에서 보자면 영 아쉬운 대목이다. 모든 세대는 자기의 이야기를 할 몫과 의무가 있다. 경향각지의 60대들에게 산악계에 회고담으로 '봉사'할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작금의 '사람과산'에서 내가 주목하는 건 사실 이분들의 연령이 아니라 연재 기사의 주제이다. 1990년대와 달리 '한국에서의 알피니즘의 현재와 미래'' 등등 '등산 철학 또는 거대담론'이 주된 주제이다. 작금의 산악계 현실에 비추어보면, 이게 바람직한 현상일까 궁금하다. 과연 고산등반에 '근사한' 이론이 필요한가도 의문이다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라는 노래가사가 자꾸 겹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김영도 선생님의 위상을 언급하고 싶다. 잡지에 글의 기고여부가 곧바로 판단기준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같은시기 손경석 선생님은 월간 산지에 줄기차게 '등산사'라는 주제로 글을 기고해 왔다. 반면 김영도 선생님은 같은 시기 등장하지 않는다.

 

77에베레스트 초등을 하고, 대산연 회장을 끝낸 후 산악계 전면에서 사라져서 등산연구소를 세운다. 한참동아 마치 '유폐'하듯 하여 외국의 글을 읽고, 번역을 하고 그리고 책을 썼다. 그의 글과 생각이 온축되어 있는 건 이 시기에 힘입은바가 클 것이다.  그가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고 이 부분은 다시 확인하여 올릴까 한다. 그때까지는 가설.

 

 

 

 

덧붙여) 그렇다고 1990년대 사람과 산지에도 등산담론이 없던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글의 연재자가 바로 젊디젊은 박인식이라는 거다. 그는 '한국만의 고유한 등반철학이 가능한지'를 상당히 현학적으로 풀고 있다. 아무래도 사람과 산이 조선적인 '백두대간' 붐을 불러 일으키면서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다.

 

덧붙여) 체크해 보지는 않았지만 외국의 등산잡지에는 등산계 '원로'들을 위한 지면이 그리 많지 않을 걸로 짐작한다. 원로들과의 소통은 에세이, 자서전 또는 평전 등 호흡이 '긴' 단행본으로 가능할 것이고, 그런 책들이 정작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덧붙여) 한 인간에게 공과()가 함께 하는데, 극동 아시아 한국에 있어서만큼은 라인홀트 메스너의 '과'가 너무 크다고 본다. 그의 책이 너무 많이 번역되었다. 다른 레전드급 유럽의 등산가들과 달리 그는 유달리 등반의 스타일, 등반을 철학과 종교적으로 성찰하는데에 집착한다. 이게 근본주의적인 한국인들의 심성과 아귀가 너무 맞아 우리를 너무 근엄한 쪽으로 끌고 갔다.

 

덧붙여) 중국등산계가 본격적인 의미의 고산등반에 뛰어든 건 개방 이후 2000년대쯤 될 것이다.  중국에는 라인홀트 메스너의 단행본은 커녕, 중국산악계에 그의 영향은 그리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만큼, 중국은 메스너식의  '거창한 철학으로부터 자유로운'  고산등반의 꽃이 갈수록 피게 될 것이다. 고산등산에 있어서 '뭔가 있어 보이면' 좋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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