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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잡지 "악인"의 표지에 대하여.

일본의 등산사와 문화|2021. 10. 15. 23:15

지난 수요일, 마운틴 저널 사무실에 들렀다.

그동안 사무실 내부 풍경의 일부는 페이스북에서 조금씩 본적이 있지만 방문은 처음이라 궁금했다. 

 

그 중에 오늘은 일본잡지 "악인" 2016년 6월호 표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왜 한국의 산악인들은 '악우'라는 말은 좋아해도, '악인'은 싫어할까요?

 

휴간 또는 폐간을 했다가 몽벨사에서 인수하여 새롭게 내고 있는 일본의 전문등반 잡지인 '악인'이다.

2016년 6월호의 특집은 "한국의 산"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목차를 보니, 북한산과 도봉산 설악산 뿐 아니라 지리산 불암산 등 망라범위가 좁지 않다.

 

악인(岳人)은 물론 전문산악인을 뜻할 것이다.

한국에서 악인이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고 악우(岳友)라는 말은 지금도 구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위적인 산악회, 악우회도 떠오른다.

 

악인과 악우는 둘다 일본식 한자어인데, 악인이라는 말은 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지 않을까?

아마도 한국어의 한자 발음은 악인(岳人)하고 악인(惡人)하고 똑같기 때문일 것이다. 

산악인이 나쁜놈이라고 들려서야 안될 일이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악인(岳人)은 가쿠진이라고 말하고, 악인(惡人)은 아쿠닌이라고 읽는다.

일본인들은 둘 사이에 음성학적으로 전혀 오해나 혼동을 할 일이 없다.

 

 

북한산은 외국의 잡지에서 보니 더 좋아 보인다.

 

이영준 마운틴저널 발행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본에서 "악인"을 구독하는 이들의 연령대는 6,70대라고 한다.

예전에 "악인"을 구독하든 젊은 등산가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애정을 보여서라고 한다.

점점 사세가 약해지고 있다는 듯.

인수봉을 "동양의 오세미티"라고 불린다고 하고 있다.

이 비유는 일본인 기자가 붙였을지, 한국의 기고자가 붙였을지 막 궁금해진다.

 

다시 돌아와서 표지를 보자.

이 어정쩡한 그림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이 그림을 그린 이를 진작부터 알고 있어 낯설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산악인들에게는 공감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악인의 표지는 실제 산을 담은 경우도 있고,

이처럼 어정쩡한 산관련 그림들도 적지 않다.

 

우리에겐 그렇지만 일본인들, 특히 6,70대 산악인들에게는 여간 살갑지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은 이그림을 그린 이는 일본에서 유명한 산악인, 산악인화가이기 때문이다.

 

화가 이름은 아제찌 우메타로(畦地 梅太郎)이다. 아제(畦 휴)는 논두렁,밭두렁이라는 뜻이다. 

1902년생으로 패전후 산악계에 입문하였고, 일본에서도 유명한 판화가인 듯 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것들은 그림이 아니라 판화인 셈이다.

올해 4월 산과계곡사에서 그의 대표작인 산의 발소리(山の足音)와 산의 보조개(山のえくぼ)를 엮어서 냈다.

 

일본의 산악세계를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좋을 터라 그 중에 한편 정도 번역해서 소개해보고 싶긴 한데...

모르겠다.

 

그는 산사나이 시리즈도 많이 그렸는데, 좌측은 책의 서두에 있는 산사나이(山男- 야마 오토코라 읽음)중 하나이다.

우측은 악인 6월호 표지이다.

 

악인의 표지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좌측의 피켈 헤드가 사라지고 지팡이처럼 보이는 건 노쇠화하고 늙어버린 일본 산악계를 상징하는 걸로 읽었다.

 

열시 넘어 우리가 자리를 일어서서 나와 돌아보다가 사진한장을 찍었다.

우이동 온동네가 어둠으로 변했는데, 산두부집 3층만 불이 훤하다.

 

낮에는 하루종일 산악계 잡일(^^)과 내외빈접대에 시달리다가 이때부터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산동네라 벌써 추위가 깊어졌고, 저 불빛은 남달랐다.

무엇을 밝히려 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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